언쟁이 붙으면 그 내용과는 별개로 깎새 말투 때문에 빡치는 마누라다. 어떤 이슈를 두고 남편한테 동의를 구하려는데 대뜸 "고마 치아라 마!"가 튀어나오면 그길로 대화는커녕 전화戰火 속에 휘말리고 만다. 귀가 달린 탓에 듣긴 듣는데 재고의 여지는 없다는 점을 단호하게 밝히려는 오래된 관용구라는 점에서 깎새는 억울하기 짝이 없지만 20년 넘게 부산에 살지만 투박하고 무뚝뚝한 말투에 정나미가 뚝 떨어지는 충청도 태생 마누라 입장에서는 오늘 제대로 한판 붙어볼 작정이냐며 대거리가 가능하겠다. 한참 전에 유행했던 붕어빵 유머의 최신 버전인 셈이다.
서울 신혼부부가 붕어빵 장사를 보고,
여 : 자기야 저 붕어빵 먹고 싶어. 사 줘.
남 : 그래 자기 여기 있어. 맛있게 먹어.
여 : 자기야 이거 머리부터 먹을까 꼬리부터 먹을까?
남 : 자기는 아무렇게 먹어도 다 이뻐.
부럽게 바라보던 부산 신혼 부부가,
여 : 보소 저 붕어빵 사 주소.
남 : 뭘라꼬.
여 : 묵고 싶어서예.
(남자 마지못해 사준다.)
여 : 보소. 이거 대가리부터 묵을까예 꼬랑데이부터 묵을까예?
남 : 닌 사주도 지랄이가. (이근열, 사투리의 미학 <1> 부산사람, 부산말, 국제신문, 2004.08.31)
부산말에 정통한 연구가가 밝히길, 부산사람이 무뚝뚝하다고 인식하는 이유는 어휘나 표현의 문제가 아니고 발음과 억양, 즉 화법의 문제 때문이라고 했다. 부산말이 무뚝뚝하다지만 애정을 가지고 말하면 정감이 넘친다. "많이 무라"보다는 "많이 무거라"가, 이것보다는 "많이 먹거래이"가 더 정감있게 들린다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이걸 토대로 다시 붕어빵을 먹는 부산부부 대화를 들어보자.
여 : 저 붕어빵 좀 사 주이소예.
남 : 와 배고프나?
여 : 그냥 묵고싶어예.
남 : 아나, 많이 무우라.
여 : 이거 입부터 묵을까예 끄티부터 묵을까예?
남 : 니는 마 무도 이쁘다 아이가. (같은 기사)
외지 출신 교수 둘이 합심해 부산 사투리에 관한 책을 냈다고 해서 부산 지역 일간지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쓰잘데기 있는 사전:말끝마다 웃고 정드는 101가지 부산 사투리』(호밀밭) 공동저자인 전주 출신 양민호(부경대 사회언어학 방언학), 서울 출신 최민경(부경대 사회학) 교수는 "정작 부산 사람들은 이렇게 재밌고 멋진 부산말을 제대로 자랑하지 않는 듯하다. 일본에는 방언 굿즈로 사투리 사전이나 사투리가 쓰인 손수건들을 판매한다."(양민호)거나 "부산 사투리는 단순한 억양이 아니라 삶의 리듬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지역성과 감성을 연결하는 살아 있는 언어유산으로 소개하고 싶었다"(최민경)면서 책을 내게 된 동기를 밝혔다.(국제신문, 2025.07.08 기사에서)
높낮이가 뚜렷하고 축약과 생략이 특히 많은 부산말을 언어 표현의 상황적 요인으로만 인식하면 투박하고 무뚝뚝하게 들릴 법하다. 하지만 책을 낸 외지 출신 저자들처럼 부산 사람의 인식과 정신에서 비롯되었다는 포용성으로 부산말을 받아들인다면 완전히 다른 말로 들리게 된다. 기사에 예시로 등장하는 낱말들은 갯가사람 특유의 투박과 직설이라는 외피를 뒤집어썼지만 수줍은 정감을 품은 부산말 고유의 뉘앙스가 느껴지기도 한다. 책 읽는 걸 싫어하는 마누라한테 『쓰잘데기 있는 사전』을 선물해 깎새 본심은 그게 아니었다는 점을 반드시 알려줄 테다.
- 속닥하다: 적은 수의 사람들이 모여서 끈끈하고 가깝게 지내는 모습
- 알로보다: 깔보다
- 디비쪼다: 우선순위를 잘 모르고 엉뚱한 일을 할 때, 혹은 뒷북치다
- 낸내: 아이를 재울 때
- 박상: 튀밥
사족. 깎새가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 기말고사 때 컨닝하다 걸렸다. 시험 감독관은 당시 학과 사무실 조교를 맡은 하늘같은 선배였다. 열나게 베끼고 있는데 깍짓동만한 사내가 유령처럼 스윽 다가와서는,
"와, 꽈 수석 묵을라꼬?(왜, 과 수석 할라고?)
장난기 어린 하이톤으로 뇌까렸다. 내일모레면 졸업할 녀석이 찌질하기 짝이 없다는 책망을 진득한 부산말로 에두른 덕에 그나마 덜 쪽팔렸다. 이후 그 조교는 임용 복이 없는 대신 부산말에 탁월한 권위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