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일상성

by 김대일

사진 보기를 즐기는 딜레탕트한테 한영수(1939~1999)와 이노우에 코지(1919~1993)는 수수께끼적 사진가들이다. 생전에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두 작가. 하지만 작품을 뒤섞어 놓으면 어떤 게 한영수 작품이고 이노우에 코지 것인지 도저히 분간이 안 간다. 사진 배경, 등장인물 뉘앙스, 구도, 사진 속 서정까지 신기할 정도로 닮았다. 화면을 밀착시켰다 펼치면 대칭 무늬가 생기는 데칼코마니가 따로 없다. 오죽하면 이노우에 코지 아들인 이노우에 하지메가 한영수 사진을 처음 보고 '아버지의 사진을 보는 것 같다'고 감탄했을까.

두 작가의 2세가 의기투합해 2021년 <그들이 있던 시간 The Times They Are 彼らがいた時> 사진전을 연 적이 있었다. 두 작가는 각각 서울과 후쿠오카를 배경으로 삼아 전쟁통에 잊어버렸던 건강한 인간성을 담으려 했다. 그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어린아이들의 해맑은 모습과 생동감 넘치는 인간 군상들에서 희망과 웃음을 찾으려는 두 작가의 노력까지 신기하리만치 닮았다.

사진 보기를 즐기는 딜레탕트가 두 작가에게서 특히 주목한 건 평범한 나날일지언정 건강하게 살아가려는 현존재의 실존양식, 일상성이었다. 전쟁이란 아수라장에서 아득바득 발버둥치다 절망하고 마는 인간(이를테면 임응식의 <구직>) 대신 어두운 시절임에도 빛나는 미소를 잃지 않고 일상을 따뜻하게 헤쳐나가려는 인간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두 작가의 예술성은 충분히 빛을 발한다. 더군다나 흑백 프레임이라는 장치로 보다 핍진하게 담아내 효과를 배가시킨 점에서 대단히 매력적이다. 하여 닮은 듯 다른(나라마다 고유한 분위기라는 게 있으니까) 두 작가의 작품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손님이 뜸하면 가끔씩 점방 밖 풍경에 심취한다. 그 풍경은 어제와 같고 내일도 다르지 않을 테지만 무료한 풍경은, 그러나 그 풍경을 아우르는 일상을 주도하는 사람들로 해서 풍요롭다. 그들의 표정, 그들의 움직임, 그들의 음성에 내재된 생동감을 포착하는 즐거움은 의외로 크다. 다만 볼 줄만 알았지 다룰 줄 모르는 카메라 앵글로 포착할 수만 있다면 주저리주저리 씨불이는 것보다 더 효과적일 텐데 하는 아쉬움은 크다. 옆 건물 자동차경정비 점방 안주인이자 이 동네 통장인 나 많은 여자가 내지르는 쇳소리와 그 쇳소리를 더욱 부각시키는 과장된 몸짓을 요행히 프레임에 담았다고 상상해 보라. 잔잔한 물결에 파문이 일 듯 심심한 시공간을 깨는 경종이자 치열한 역동성으로 더할 나위 없다. 글로는 도저히 표현해내기 어려운 생동감, 이것이야말로 한영수와 이노우에 코지가 담아내려 했던 건강한 일상성이 아닐까 싶다.

작가의 이전글수줍은 정감을 품은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