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사와 미용사

by 김대일

김숨이라는 소설가가 일간지(경향신문)에 연재 중인 <김숨의 위대한 이웃>은 주변에서 흔히 보는 장삼이사의 흔치 않은 사연을 소설스럽게 써내려가는 미덕이 엿보인다. 거기에서 '이발사 박씨'(2024.12.04)가 등장하고 6개월쯤 후엔 공교롭게도 '미용사 정영희씨'(2025.06.25)가 등장했다. 동종업계에 몸담은 이유로 두 인물이 등장한 이야기를 심상하게 보아 넘길 수가 없었던 깎새는 불현듯 '조락凋落'(이발사 박씨)과 '진취進取'(미용사 정영희씨)라는 두 낱말을 감상처럼 떠올렸다.

연재물에 등장하는 두 인물 모두 늙은이이긴 했지만 세상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천양지차였다. 신작로로 흰 상여가 나가던 풍경이 흑백사진 속 풍경이 된 지 오래인 동네의 이발사 박씨는 요양원에 들어갔다. 배우고 싶은 욕심은 좋은 욕심이라는 정영희씨는 월요일은 서예, 수요일은 팝송 영어, 목요일은 수묵화, 금요일에는 드럼, 일요일은 천아트하느라 바쁜 미용사다.

언제부터인가 이발사라는 호칭은 케케묵은 구닥다리 신세로 전락했다. 이발사만큼이나 이발소란 공간도 퇴락한 양반집 툇마루를 연상시킨다. 머리털은 늘 자라고 자란 만큼 깎아 주는 게 변하지 않는 세상 이치임에도 그걸 대행하는 이발사와 이발소는 왜 구태의연해졌을까.

똑같이 머리를 깎아 주지만 미용사라는 호칭이 사회 전반에 걸쳐 진취적인 유행 선도자의 이미지로 각인된 건 어인 까닭일까. 이름도 외우기 어려운 갖가지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창조하고 이를 익히는 데 능란해서일까 아니면 미용업 자체에서 풍기는 매력이 신선발랄해서일까.

조락한 이발사와 진취적인 미용사를 산업적 측면에서 대조하는 작업을 깎새한테 바라는 건 무리다. 또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다. 사람이 하는 일을 수치적으로만 분석하는 건 꼴같잖고 생리에도 안 맞다. 다만, 김숨이라는 소설가가 그럴 의도로 글을 썼을 리 만무하지만, <김숨의 위대한 이웃>에 등장하는 이발사와 미용사를 통해 살짝 짐작은 해볼 수가 있겠고 깎새는 이렇게 요약했다.


- 지는 석양을 바라보던 이발사는 터덜터덜 오래된 단골 선술집로 발길을 옮긴다. 하지만 미용사는 지는 석양을 밝아오는 여명인 줄 착각한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느낌이니 글을 읽은 당신이 느끼는 감정과도 다를 수가 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412042054005

https://www.khan.co.kr/article/202506252124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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