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우라는 응용언어학자는 AI시대에도 여전히 읽고 써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인간과 인공지능이 언어를 배우는 방식의 근본적 차이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한 가지 사고실험을 해 보자. 식사 중인 가족. 아이가 바닥에 떨어진 계란말이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지지.” 아빠가 말한다. 아이는 무슨 말인지 모르고 손을 뻗는다. “지지! 지지!” 이번에는 엄마가 외친다. 다급한 제지도 무소용. 아이는 계란말이를 집어든다. 끼익. 아빠가 일어서고 의자가 바닥에 긁힌다. 아이는 엄마 아빠의 심상찮은 표정을 살핀다. 급기야 아이의 계란말이를 음식물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는 아빠. 아이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일련의 사건 속에서 아이는 ‘지지’라는 단어만 배우지 않는다. ‘지지’라는 말을 둘러싼 여러 경험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떨어진 계란말이를 향한 애타는 눈빛, 양육자의 근엄한 표정, 멀어지는 계란말이를 바라보는 무력감, 터져나오는 눈물 등이 모두 엮여 ‘지지’로 대표되는 경험을 구성한다. ‘지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어떤 단어도 구체적인 경험의 축적 없이 습득되지 않는다.(<“재미있으니까”…AI시대, 여전히 직접 읽고 쓰는 이유>, 한겨레, 2025.07.21에서)
인간이 체화된 지식을 통해 언어를 습득한다면 인공지능 챗봇은 인터넷에 있는 방대한 데이터를 모으고, 정제하고, 수리통계학적으로 처리함으로써 언어를 학습한다. 간단히 말해 인간은 삶을 통해 말을 배우고,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통해 말을 배운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응용언어학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인간은 읽으며 기억을 소환하고, 추론하고, 궁리하고, 공감한다. “기후재난이 무섭다”라는 문장을 쓰는 나는 두려움과 무력감, 책임감을 동시에 느낀다. 한 단어 한 단어가 감정과 상상, 행위를 추동한다. 슬픈 단어는 정말로 슬프고, 아픈 문장은 정말로 아프다. 인간은 언어를 경험하지만 기계는 언어를 계산한다. 그들의 계산은 우리의 경험을 대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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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언어처리 역량에 경탄하기 전에 재미도 기쁨도 상실한 읽기 쓰기의 풍경을 똑똑히 바라보자. 그게 먼저다.(같은 글에서)
책상물림 세상 물정 모르듯 경험이 빠진 언어는 영혼 없는 군더더기일 뿐이다. 인공지능이 글쓰기의 생산성을 끌어올린다지만 정작 그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판별하는 사람의 지적 수준이 퇴보적이라면 "어떤 소유권도 느끼지 못하"는 신세가 될 뿐이다. 응용언어학자는 다른 매체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을 잘 쓰기 위해서는 사람은 '문해력'과 '체화된 지식'이 먼저 갖춰져야 한다고 역설했다(<읽기·쓰기를 AI에 '완전히' 외주화할 수 없는 이유>, 시사IN, 2025.07.2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