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순 빠진 류산슬

by 김대일

류산슬을 집에서 자주 해 먹는다. 다양한 식재료가 들어가는 것 치고는 요리하기가 간편하고 부드러운 식감에 영양도 풍부할 성싶어서 깎새가 특히 즐기는 음식이다. 다 좋은데 딱 한 가지 아쉬운 건, 죽순이 꼭 빠진다는 점이다. 근처 재래시장을 뒤져봐도 잘 없고 인터넷으로 주문하려니 가공식품은 좀 께름칙해서 부득불 빠지지만 꼭 앙꼬 없는 찐빵처럼 허전한 감은 감출 길 없다.

류산슬에 죽순을 넣는 까닭은 아삭한 식감을 더하고 재료 본연의 맛과 향을 살려 요리의 풍미를 높이기 위해서라고들 한다. 쉽게 말하자면 궁합이 맞아서겠다. 잘은 모르지만 음식이라 함은 각 재료들이 서로 어우러져 조화를 이룰 때 감칠맛이 나는 법이다. 감칠맛이 꼭 사람의 마음만 끌어당기는 건 아니다. 감칠맛이 도는 온전한 요리를 먹어야 비로소 음식이 내포하는 섭리를 온전히 받아들여 심신을 또한 온전히 꾸릴 수 있다는 진지한 의식에 다를 바 없다.



대가리를 먹는다는 것은 그 존재를 정면으로 대하는 것과 같다. 이거 진지한 문제이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다른 생명을 먹어야 하는 종족이라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는 지점이니까. 그럴 때마다 나는 이 물고기의 일생이 몸 안으로 고스란히 옮겨온다고 생각하며 우주 안에서의 단백질 순환 구조를 떠올린다. 그것들이 모인 게 현재의 나 자신이다. 괴테도 이렇게 말했다. "돼지고기를 먹으면 그 돼지고기는 괴테가 된다."

나는 그게 예의라고 생각한다. 스테이크 접시에 아스파라거스를 올려놓는 이유와 비슷하다. 아스파라거스는 죽인 소의 명복을 빌기 위한 조화弔花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나는 죽였으면 무조건 다 먹자 주의이다. 그래야 다른 것을 덜 먹는다. 때문에 대가리 떼어낸 애들에게는 좀 미안한 마음이다. 살코기만 통째로 빼앗아버린 느낌이 드니까. (한창훈)



해 먹기 편하고 나름 영양이 풍부해 류산슬을 요리하지만 먹으면서도 부족감을 떨칠 수 없는 건 류산슬을 먹었음에도 그 류산슬이 깎새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류산슬에 죽순이 빠진 게 뭔 대수라고 쓸데없이 씩둑거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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