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 숨은 귀뚜라미

by 김대일

잠결이었다. 고3 수험생인 막내딸이 늦게 귀가한 기척은 못 들었는데 그 아이가 호들갑을 떠는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 아빠, 귀뚜라미가 냉장고 밑으로 들어갔어!

귀뚜라미가 어떻게 집안으로 들어왔을지 궁금했고, 하필 오래된 냉장고 밑으로 들어간 까닭이 켜켜이 쌓인 옛정이 복받쳐 주인 대신 곧 내버려질 냉장고를 위무하려는 건지, 그게 아니라면 서늘한 기운이 감돌 가을을 미리 전하려는 성급한 전령을 자처하려는 건지 꿈을 꾸듯 잠결이었다.




귀뚜라미

나희덕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 소리에 묻혀

내 울음 아직은 노래가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 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 하늘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여름의 대립은 겨울이 아니고 가을이다. 억지 같은 이 구도를 깎새 머릿속에 각인시킨 동인이 바로 위 시다. 시 속 여름은 억압, 가을은 자유를 상징한다. 독해가 이왕 억지스러운 김에 더 비약시켜 볼 테다.

귀뚜라미가 보내는 타전 소리, '귀뚜르르 뚜르르'가 꼭 '아브라카다브라'로 들린다. 소원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아브렉 아드 하브라'에서 유래한 주문. 그 원래 뜻은 '당신의 불꽃이 세상을 밝힐 것이다'라나.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와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라는 두 시구에 주목한다. 문장이 '~ 있을까'란 의문형으로 끝을 맺는다고 해서 곧이곧대로 읽어 버리면 해석이 자칫 꼬일 수 있다. 암만 애를 써도 소용이 없어서 낙담하는 비관으로 들린다. 하지만 '~ 있을까'를 '~이고 싶다'나 '~ 이어야 한다'로 읽으면, 귀뚜라미 울음 소리는 누군가의 마음을 격동시키고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가 됨으로써 세상을 밝히는 긍정의 신호가 된다. 즉 '불꽃'과 '울음'은 이음동의어가 되는 셈이다. 하여 <귀뚜르르 뚜르르=아브라카타브라>라는 공식은 성립한다. 이현령비현령.

냉장고 밑으로 들어가 숨은 귀뚜라미는 울지 않았지만 가을은 머잖았다. 그날 새벽 공기가 삽상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COzBKiR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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