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별쭝나게 구는 제 친구들을 싸잡아 성토하자 언니가 한마디했다.
- 네 친구들은 하나같이 왜 그런대? 안되겠다. 이제부터 친구 새로 사귀려면 언니한테 허락부터 맡아!
자매는 공교롭게도 졸업반이다. 편입하느라 늦었지만 언니는 대학 졸업반, 여섯 살 아래 막내는 고교 졸업반. 3년 넘게 운동(펜싱)을 한 막내가 언니보다 덩치가 훨씬 크고 다부지다. 그걸 믿고 뻗댈 법도 한데 언니한테만은 고양이 앞에 쥐다. 내 친구 내가 사귀겠다는데 언니랍시고 웬 참견이냐 싶겠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참으로 의외이면서 심쿵하다.
- 언니 무서워. 오죽하면 저럴까.
깎새 핏줄이래서가 아니라, 자매 사이가 무척 좋다. 식탁에 앉아 함께 밥을 먹건 침대에 널부러져 수다를 떨건 언제 어디서나 깨가 쏟아진다. 으르렁거리다 못해 서로 못 잡아 먹어 안달이 난 드라마 속 자매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자매 우애가 깊은 건 여섯 살 터울이 완충작용을 한 덕분이라고 깎새는 여긴다. 여섯 살이나 많은 언니한테 동생은 무척 고분고분하다. 언니라는 존재가 각인되고부터 제 언니 나잇값을 두려워한 까닭이지 싶다. 동생이 순순한 만큼 언니도 동생을 유순하게 대한다. 오뉴월 하루볕이 어디냐며 유세 부릴 만도 한데 동생 구박하는 걸 단 한 번도 본 적 없다. 스스럼없어 하는 언니를 동생이 오히려 말리면 말렸지.
둘 다 타고난 천성이 수더분한 데다 수틀리면 발끈부터 하는 불뚝성질 어미가 무서워서라도 불미스러운 짓을 자초하지는 않는다. 머리가 굵어질수록 자매 우애가 더 돈독해지고 서로를 위하는 품까지 아기자기해서 그런 녀석들을 보는 낙에 아비는 그나마 살맛이 나는 게다. 자매가 이대로 안 변하길 바랄 뿐이다. 살다 보면 세상 풍파를 으레 겪을 테지만 벅찬 줄 뻔히 알면서 혼자서 아등바등하다 탈진해 버리는 어리석음만은 범하지 말았으면 한다. 설령 큰 힘이 되지 못할지라도 지친 몸뚱아리 잠시나마 기댈 수 있는 정서적 피난처로 내 언니, 내 동생을 꿍쳐 둔 비상금인 양 소중하게 여기면 더 바랄 게 없는 깎새다.
막내딸이 수시 지원할 학교를 고르느라 골치깨나 앓는 중이다. 성적에 맞으면서 원하는 학과를 고르려니 부산에서 꽤 떨어진 지역 대학도 기웃거리고 (충청도 태생인 제 어미가) 옆에서 은근히 들쑤신다. 품 안의 자식 기한이 얼마 안 남았다는 서운함이 별안간 깎새 마음을 헤집는다. 막내딸이 집에 없음 그지없이 허허로울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