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발부는 수지부모인지라

by 김대일

이발하러 오는 손님 거개가 가벼운 입성이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여름철이나 계절이 가을로 들어서는 문턱에 서 있어도 더위가 좀처럼 가시지 않는 요즘 같은 시기엔 특히 위아래 분간 안 하고 짧디 짧다. 그러다 보니 그 짧은 복장이 답답해 툭툭 불거져 나온 문신을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다. 고故 신영복 선생은 보는 사람들을 겁주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애벌레들의 안상문眼狀紋이나 경악색驚愕色과 다를 바 없고,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하여는 "돈이나 권력이 있든지 그렇지 못하면 하다못해 주먹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지극히 단순하되 정곡을 찌른 달관을 서투른 문신은 이야기해준다고 말씀하셨는데, 아무리 세련되고 정교한 문신이라 할지라도 그 '주먹'이라는 상징성 때문인지 위화감부터 덜컥 드는 건 어쩌지를 못하겠다. 아무튼 문신이라고 하면 유난히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다.

도깨비가 제 몸에 얹혀 산 지 14년째라고 했다. 우락부락한 덩치에 비해 앳된 티가 자르르한 문신 손님한테 에두르지 않고 곧장 연식을 물었다.

- 스물아홉 먹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부모님 속을 뒤집어 놓았죠.

온몸이 도깨비 문신으로 시푸르뎅뎅하면 불편하지 않냐고 또 물었다.

- 불편하죠. 철부지 적 호승심에 괜한 짓 한 거죠.

사람들로 붐비는 유흥가를 짧은 티를 입고는 도저히 못 걸어 다닌다고 고백했다. 드러내고 다니다 보면 모세의 기적처럼 주변이 쩍 갈라지는 경험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라고도 했다. 천둥벌거숭이마냥 으쓱했었지만 나이 먹을수록 창피가 더 앞섰댔다. 장가갔냐고 내처 물었더니 5년 사귄 여자친구가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여자친구는 도깨비를 어떻게 생각할까.

- 처음 사귈 때는 별로 개의치 않더라구요. 근데 결혼 얘기가 슬슬 오르내리니까 자꾸 걸리나 봐요. 부모님이 도깨비만 보고 사람 판단할까 걱정스러워서.

여자친구 부모님을 찾아뵙자니 소매 긴 셔츠를 입고 갔댔다. 무더위에 습도까지 높은 한여름이었는데도. 비지땀, 구슬땀, 식은땀, 마른땀··· 땀이란 땀을 바가지로 흘린 덕분에 도깨비 실체는 겨우 감췄지만 앞으로가 더 첩첩산중이라고 한숨을 푹 쉬었다. 도깨비를 이고 사는 사람의 남모를 비애였다.

지우자면 방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다만, 기생하는 도깨비를 방생하자니 비용이 적잖아서 문제지. 지우는 데 기천만 원을 호가하는 목돈이 필요하다나. 새길 때 없앨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은 불찰이다. 문신 지우기에는 수중에 돈 나가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 뒤따른다. 어머니 성화에 못 이겨 손가락에 새긴 콩알만 한 것들을 시험 삼아 지워봤다. 레이저로 지진 부위가 이스트로 구운 빵마냥 부풀어 올랐다. 부풀어 오른 부위가 화상 입은 듯이 화끈거리고 쓰라려 아주 혼났다. 작은 게 그럴진대 하물며 온몸을 다 지지자면 일상을 다 반납할 각오를 해야 한다. 돈도 잃고 직장도 잃을 판이다. 다른 건 다 잃어도 여자친구는 잃기 싫은 스물아홉 살 청년은 그럼에도 도깨비 지울 결심만은 변함이 없다. 이럴 거면 왜 새겼냐고 따지듯 물었다.

- 그러게 말입니다.

세상은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문신 지우는 걸 지상 과제로 삼는 청년이 있는 반면 문신을 새겨야 먹고 사는 타투이스트도 있다. 한때 캄보디아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명성이 자자했었던 타투이스트는 깎새 점방 단골 오브 단골이다. 그에게 있어 요즘 화두는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을 허용하는 ‘문신사법’ 이다.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의료인이 아닌 ‘문신사’도 문신 시술을 할 수 있게 된다. 문신이 생업인데도 함부로 간판도 못 거는 무허가 신세 설움을 참아야 했는데 법안이 통과돼 이 나라에서 떳떳한 직업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싶다는 그의 소망은 무척 간절했다.

새겼던 문신을 지우려는 손님을 동조하는 한편 그걸 새겨 밥 벌어먹는 손님한테는 법안이 하루라도 빨리 최종 통과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며 혓바닥을 놀리는 스스로가 참 가증스러운 깎새다. 면구스러운 건 아는지 슬쩍 덧댄다는 소리가,

-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금과옥조로 여기는지라 나는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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