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가 아닌 소설

by 김대일

성석제 단편소설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는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찻간에서 깡패 두목인 주인공이 자신의 일대기를 회상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4.5초는 무척 과학적으로 계산된 수치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을 남긴 갈릴레이 갈릴레오 덕분에 자동차가 공중에 떨어질 때의 시간을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공기의 저항을 무시했을 때 지상으로 낙하하는 물체의 운동을 자유낙하라고 하는데 자유낙하 운동은 물체의 낙하 거리가 지구의 반지름에 비해 작을 경우, 중력가속도 g(9.8미터/초)에 따르는 등속도 운동이 된다. 물체가 지상 h미터의 높이에서 조용히 떨어진다고 하고 t초 후의 낙하 거리를 s미터, 그 순간의 속도를 v미터/초라고 하면, 낙하 거리는 가속도 곱하기 시간의 제곱의 2분의 1이다. 이는 s=1/2gt², v=gt라는 산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면 지상 100미터 높이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아래로 떨어지는 대머리독수리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독수리가 땅에 떨어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00=1/2×9.8×t². 고로 t=4.5175394이다. 또, 최종적으로 땅에 닿은 순간의 속도 v=9.8×4.5175394. 이를 시속으로 환산하면 159.37878 킬로미터가 된다. 불쌍한 대머리독수리. 머리가 무사할 수 있을까.(성석제, 『새가 되었네』, 1996, 강, 11쪽에서)



추락이라는 매우 짧은 사건과 길다면 긴 한 사람의 일생을 절묘하게 섞어 내는 영특함이 이 소설의 미덕이다. 거기에 성석제 특유의 익살과 해학이 버무러진 글솜씨가 또한 한몫하고. 소설을 읽으면서 궁금해졌다. 비상한 순간, 그 찰나에 과연 오랜 풍상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 갈까. 아, 그렇다! 추락은 아니었으되 소설처럼 깎새도 아찔한 순간이 닥치자 봇물 터지듯 온갖 장면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으니까.

토요일, 일요일 새벽 점방이 가까워지면 깎새 마음이 다급해진다. 노상에 줄을 그어 놓고 마련한 공영 주차장이 주말에서 주일로 이어지면 차들로 꽉 차곤 해서. 특히 일요일은 주차 관리인이 출근을 안 하는 데다가 당연하게도 주차비를 안 내도 되는 무주공산인지라 눈치 빠른 이들이 그 전날부터 선점하는 일이 다반사다. 일요일 주차 대란이 기본값이 된 지 오래다.

일요일이던 그날도 역시나 주차된 차들로 공영 주차장은 새벽부터 빽빽했다. 그런데 단 한 군데, 그것도 깎새 점방 바로 옆에 딱 한 군데만 공간이 비어있음을 발견한 깎새는 먹잇감을 향해 돌진하는 송골매처럼 반대 차선에서 중앙선을 침범해 유턴을 감행하려고 핸들을 막 돌리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뭣에 홀렸는지 깎새는 아주 잠시 주춤했고 거의 동시에 오토바이 한 대가 윙~하고 깎새 차를 추월해 갔다. 만약 중앙선 침범하겠다고 마음먹자마자 유턴을 했다면 고대로 오토바이와 충돌했을 게 뻔했다.

그 새벽에 줄줄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을 생각도 못한 채 깎새는 찻간에서 멍해 있었다. 충돌을 했다면 이후로 벌어졌을 사태는 처참했을 테고 상상하기 싫다는데도 꼭 현장을 내려다보듯 또렷한 상을 그리며 깎새를 괴롭혔다. 벌어지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치부하는 대신 그때 그 순간 무엇에 홀려 무춤해 버린 스스로가 일단 너무 무서웠다. 그보다는 핸들을 돌리지 않고 아주 잠시 멈칫한 몸과 마음이 따로 놀던 찰나와도 같은 순간에 참으로 많은 것들이 머릿속을 떠다니다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어처구니없다고 해야 할지 섬뜩하다고 해야 할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기분에 잠겼더랬다. 당시 수없이 많이 명멸했던 정체는 이 글을 쓰는 지금 전혀 기억해내지 못하지만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처럼 아마 파란만장했던 깎새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사라져 갔을 거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하여 성석제가 쓴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는 허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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