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기투합

by 김대일

찐단골 중에 개인택시 기사가 있다. 그 기사 막내아들도 아빠 따라 단골이었지만 2년 전 대학교 입학한 뒤로 발길을 뚝 끊었다. 대학교 물을 먹더니 자유분방해졌겠거니 치부하고 말면 그뿐이겠으나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아빠 전언에 따르면 일본, 중국으로 넘어가 학과 공부를 하느라 부산에 잘 없다는 거였다. 도대체 어떤 학과에서 무슨 공부를 하길래 한 학기마다 이 나라 저 나라로 유학을 간다는 거냐 물었더니 대학교라고 보내는 놨는데 그 정체를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의뭉을 떤다. 하기사 깎새나 기사나 무릇 적을 둔 학교에서 공부해야 학생 취급하는, 하이브리드는 건 자동차에만 있는 줄 아는 영락없는 꼰대 세대라.

개인택시 기사 아들이 한 달 전에 사자 머리를 하고선 나타났다. 일본은 비싸서 이발을 전혀 못 해 이 지경에 이르렀다면서. 아주 돌아왔냐고 물었더니 조만간 중국으로 가야 되서 떠나기 전에 또 들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엊그제 정말 또 왔다. 궁금한 건 결코 못 참는 깎새인지라 단도직입적으로다가 물었다. 무슨 학과길래 제 집 안방 드나들듯 딴 나라 유학 호사를 누리냐고.

캠퍼스아시아학과가 원래 그런 과랬다. 동아시아 대학을 순회하면서 유학을 하는 이동캠퍼스 개념이라나. 동아시아가 옛날로 따지면 극동아시아이고 극동에 나라라고 꼽아봐야 한국, 중국, 일본 3개국뿐이긴 하나 어쨌든 중국, 일본에 가서 공부를 해야지 학점을 딸 수 있는 참으로 기막힌 학과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순회를 하면서 배우는 게 뭐냐고 묻는 대신 덕분에 외국어는 많이 늘겠다고 은근 추켜세웠다. 일본 떠나기 전 담당교수가 히라가나, 가타가나 암기 시험 쳐서 기준 점수에 이르지 못하면 일본 안 보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일본어는 좀 늘었는데 중국은 이번이 처음이라 직접 부딪히면서 배우는 수밖에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일본, 중국을 돌아다니면서 자연스럽게 국제감각을 익힐 수 있으니 외교, 상사 분야로 진출할 가능성이 높은 점이 매력적이기도 하려니와 누구 말마따나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생각을 일찍부터 깨우치는 계기를 마련했으니 매력적인 학과를 선택했다고 깎새 혼자 뿌듯해했다.

제 자식 남보다 뒤쳐지지 않게 외국 물 먹이는 걸 마다하지 않는 바는 어슷비슷한데 정작 자신들한테는 그와는 정반대 기조를 적용한다는 점에서 두 아비는 똑 닮았다. 무슨 말인고 하니 개인택시 기사나 깎새 공히 해외여행의 무용성을 극구 강조하는 강경 국내파이다. 숫제 자식 등 떠밀어 해외 여행, 유학을 보내며 미래를 준비하는 일환이라고 잘도 포장을 하지만 자기들은 이 좋은 금수강산을 놔두고 굳이 해외로 떠나는 까닭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이율배반을 어찌 설명할꼬.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개인택시 기사와 깎새는 입을 모아 죽기 전에 꼭 이루고 싶은 바람 중 하나로 카라반을 끌고 다니면서 한반도 구석구석을 유람하는 것, 이왕 유람할 거면 마누라, 가족 다 냅두고 달랑 혼자 팔도유람에 명물 먹거리 먹으러 다니는 거라고 하니 말 다 한 셈이다. 자기 나라도 구석구석 다 못 돌아본 주제에 물 안 맞고 음식 안 맞고 언어도 안 맞는 해외로 떠나 사서 고생할 게 뭐냐는 대목에서 깎새는 환호성이나 다름없이 외쳤다.

- 거, 언제 뭉쳐서 쐬주나 한 잔 합시다. 카라반으로 둘러볼 데가 어디어디 좋은지 의견도 교환할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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