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얌전하게 깎새한테 머리를 맡기는 동안 책이 가지런하게 진열된 선반을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기웃거리던 그의 아내가 슬쩍 운을 뗐다.
- 추리소설 매니아인가 봐요.
- 그건 아니고 읽다 보니 재밌어서요.
온라인 중고서점에서 구입한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 댓 권을 보고 짐작한 모양이었다. 추리 세계로 입덕? 재밌긴 한데 그건 아니고, 추리소설 중에서도 특히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수상한 면면을 살피면서 사건 실마리를 찾아가는 재미가 솔찮아서이다. 객쩍은 소리지만 사람 심리를 탐구하는 데는 심리학 서적보다 추리소설이 재미까지 더해져 더 당긴다.
세련된 교양인으로 젠체하려고 동원할 소품으로 소설책만 한 게 없다. 요것 봐라 정신이 팔리면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는 신선놀음이 따로 없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착실한 호모 부커스로 스스로를 앙양하는 행복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거기에다 현실세계에서는 맞닥뜨려 본 적 없지만 우리 사는 세상 어딘가에서 활보하고 다닐 법한 기상천외한 캐릭터들을 원없이 만나는 즐거움까지 소설을 읽는 이유로 슬쩍 끼워 넣겠다.
이발의자에 놓여진 뒤통수만 응시하다 볼장 다 볼 깎새 팔자일지언정 그 머리통을 이고 오는 존재가 사람이고 결국 사람과 부대껴야 하는 게 또 숙명이고 보면 한 길 속도 모르는 그 사람의 밴덕맞을 '감정'으로 인해 뒤틀리고 꼬일지 모를 유약한 배알에 맷집을 단디 키워 보려는 꿍꿍이로 소설을 읽는다고 하면 너무 나간 비약일까.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는 유행가 가사가 마음에 그렇게 착 감길 수가 없는 까닭은 그런 너와 직면해야 하는 장사치 숙명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루에도 십수 명씩 들이닥치는 사람 무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가늠하고 터진 입과 반신반의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잠재우려 신체의 모든 감각을 예민하게 작동시켜야 하는 깎새의 인간심리학이란! 핍진함이란 창을 휘둘러 가상의 장막을 뚫은 뒤 당장이라도 현실계로 뛰어들 것만 같은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들이 즐비한 소설은 깎새에게 있어 훌륭한 교보재인 셈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행간의 거동을 유심히 살핀다. 또 그들에게 일일이 말을 걸어 그들 속을 떠보는 별쭝난 상상을 한다. 일종의 훈련인 셈이다. 보다 유연하고 자유롭게, 다른 한편으론 냉철하게 사람을 응시하려는 훈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