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은 사흘 내리 마신 탓에 숙취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묻지도 않은 푸념을 늘어놓으면서 이발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는 깎새 점방 맞은편 한 동짜리 아파트 2층에 사는 60대 단골이었다. 그가 자주 들를 때는 둘째 주 목요일마다 꼭 커트와 염색을 하고 갔다. 그날을 고집했던 까닭은 자주 들락거리는 근처 목욕탕이 휴무를 해서였다. 그날만큼은 목욕탕 대신 이발소에서 머리 깎고 염색하는 의례로 목욕재계를 가름하려는 나름의 루틴이었고. 언제 올 지 아는 단골 고객이 있다는 건 적금 통장을 지닌 듯 든든했지만 언제부터인가 발길을 뚝 끊었다. 그 연치에 두주불사를 마다하지 않았으니 간이 남아났겠냐는 우려가 두문불출하는 서운함보다 더 크다.
아무튼 멀대같이 큰 키에 몸매는 호리호리한 데 비해 목소리만은 중후장대했던 단골은 한량끼가 다분했다. 점방에서 바로 보이는 아파트 2층 베란다에서 편한 복장(거의 속옷바람)을 한 채 담배를 꼬나문 그를 자주 목격했다. 남들 한창 일하고 있을 대낮에 유유자적하게 담배를 피고 자빠진 그를 볼 적마다 종업원보다 꼭 일찍 안 나와도 잘만 돌아가는 가게나 회사를 보유한 사장님 같았다. 한량처럼 보이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염색약을 바르고 잠시 기다리는 사이 술이 몸에 잘 받는 편이지만 사흘 내리 달리면 쉽사리 안 깬다는 뻔한 사실을 심각하게 씩둑거렸다. 그러면서 "내 나이쯤 되면 술 먹자고 불러 주는 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어"라고 덧붙였는데 그게 깎새를 살짝 흔들었다. 예순 고개를 넘으니까 먼저 하직한 친구들이 있댔다. 그 말을 밑밥처럼 먼저 툭 던진 건 술잔을 함께 기울일 동지가 점점 줄어든다는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바일 게다. 그러거나 말거나 술자리로 의기투합할 수 있는 건 먹자고 청한 사람이나 그 청에 응한 사람이나 술 마시기 편한 심신이라 가능한 거다. 경제적으로 쪼들리거나 속이 시끄러워 바람 잘 날 없는 처지에 먼저 술자리를 청하는 건 가당치도 않을 뿐더러 그런 사정 뻔히 아는 상대방이라고 술 마시다가 얹힐 일 있나며 응할 리 또한 만무하니까. 자고로 서로 편해야 술맛도 나는 법이다. 술로 대동단결되었다면 술값 걱정일랑 말아라. 내가 1차를 내면 상대방이 2차로 보답할 테고 그 반대도 물 흐르듯 자연스러우니까. 물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물 들어올 때 배 띄우듯이 같이 마시자고 꼬드길 때가 행복한 법이니 두말없이 따라나서는 게 나이 먹어서도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요령이라면서 공치사를 남발했다.
행복한 관계론에 음주가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궤변에 일순 설득당할 뻔한 깎새. 단골 주장대로라면 쉬는 화요일마다 혼자서 술잔을 기울이는 게 불러주는 친구 놈 별로 없어 떠는 외톨이의 청승인 셈이다. 일견 타당한 성싶지만 쉬는 날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가장 홀가분한 기분으로 혼자 묵묵하게 한 잔 들이켜는 술맛이 꿀맛인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그게 몹시 궁금했다. 그러니 술맛은 양가적이고 상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