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플란트 시술 받으러 한 주에 한 번 꼴로 찾는 치과. 원장은 9년 터울 고등학교와 대학교 선배다. 하늘같은 고기수 선배라 허물없을 리 없겠으나 치료가 끝나면 따로 원장실로 부르는 경우가 근래에 잦다. 자양강장제 한 병 까 마시면서 도란도란 담소라도 나눌라치면 그만큼 거리감이 좁혀지는 듯해 흐뭇하다.
어제도 치료가 끝나자 원장실에서 '대일아!' 호출이었다. 주섬주섬 짐 챙겨 냉큼 들어갔다. 이용사 자격증 따고 난 뒤 근황을 선배가 물어서 입 안에 거즈를 문 나는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댔다. 그러다 무슨 말 끝에 토요일 오후 선배의 퇴근길 얘기로 화제가 옮겨졌다. 뜻밖의 소탈함이었다. 역시 사람은 자주 만나 얘기를 나눠봐야 알 수 있는 법인가. 예전엔 미처 몰랐던 선배의 이면이 새로웠다.
오전 진료 마친 토요일 오후 퇴근길에 선배는 지하철로 한 정거장인 부전시장엘 가끔 들른단다. 거기 가면 수타면 잘하는 가게가 있다나. 허나 선배는 수타면 가게로 직행하는 법이 없다. 가게 향하는 길 시장통 사람들도 구경하고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좋아하는 견과류도 듬뿍 산다고 하니까. 요즘 철이면 옥수수와 군밤이 군임석질로는 최고다. 없는 거 빼곤 다 있다는 부전시장이니 지천으로 깔렸다. 당연히 값도 싸고 양도 많다. 수타면 가게에 가면 우동만 시킨다. 짜장면도 먹어보고 짬뽕도 먹어봤지만 우동이 입맛에 맞을 뿐더러 소화도 가뿐해 제일 낫다. 가게 찾는 나 많은 어르신들 대다수도 우동을 시키는 걸로 봐선 탁월한 선택임이 분명하다.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서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억척스러운 시장통 사람들을 떠올린다. 새삼 자신의 나태함을 반성하고 겸허한 삶으로의 지향을 바란다. 토요일 퇴근길 배 부른 포만감만을 위한 부전시장 행이 아닌 이유다.
내가 대학 신입생이던 무렵 동아리 행사 찬조 부탁 차 대학교 근처에서 치과를 개업한 선배를 찾아갔을 때 첫 만남을 절대 잊지 못한다. 아직 이십 대인 전도유망한 치과 의사의 자신만만함, 패기발발함은 절대 포스 그 이상이었으니까. 치과 의사는 못 되겠지만 나도 저 양반처럼 당당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던 것 같다. 그런 선배가 내년이면 환갑이다. 나이는 못 속이는지 포부랄지 패기라는 단어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젊은 시절과는 다른 연륜이 묻어난다.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직업적 숙련도? 그보다는 부전시장 수타면 우동을 먹으면서 시장통 사람들의 치열함을 지긋이 관조하는 선배의 모습에서 어른의 품격이 더 묻어난다. 꽤 멋진 선배 한 분을 알고 있어서 나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