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행열차

by 김대일

「 철도원」은 회한 많은 고지식한 철도원의 이야기다. 하얀 눈이 뒤덮힌 홋카이도 시골 마을 종착역. 홋카이도 도시와 시골을 잇는 지선은 폐선이 결정됐고 늙은 철도원 역시 정년을 앞두고 있다.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딸을 잃고 그 충격으로 아내마저 세상을 뜰 때도 태연하게 역을 지킨 그였지만 먼저 떠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은 홋카이도의 눈발처럼 한없다. 곧 초등학생이 된다는 낯선 여자아이, 그 애가 놓고 간 인형을 찾으러 왔다는 곧 중학생이 된다는 아이 언니, 그날 밤 두 아이의 맏언니라며 여동생들을 잘 대해 준 것에 감사해하는 소녀가 차례로 철도원을 찾아오자 그는 '눈의 아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어준 유키코의 혼령임을 알아챈다. 유키코는 자기가 살아있었다면 성장했을 지난 17년간의 모습을 아버지에게 보여 드려 가족의 그리움을 전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다음 날, 여느 때처럼 첫차가 오기 전 눈 덮인 선로를 쓸며 도착한 제설차가 플랫폼에 제복 차림으로 깃발을 든 채 쓰러져 죽은 철도원을 발견한다.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철도원>은 소설의 서정적이면서 환상적인 면을 극대화했다. 소설이든 영화든 내가 특히 주목했던 건 슬픔을 삭이면서까지 찾는 이 별로 없는 지선의 종착역을 끝까지 지키는 철도원의 고지식함이었다. 도시와 시골을 이어주는 지선이 폐선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철도원이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건 덜 편해도 오래되어 익숙해진 것들에 대한 경의가 아니었을지.

경향신문 기사(2021.10.11.)에 따르면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무궁화호 열차의 경부선, 호남선, 중앙선 3개 노선 36%를 감축했다. 평일에는 44편, 주말에는 50편의 무궁화호 운행을 줄였다. 코레일은 수익성 제고를 위해 무궁화호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벽지 위주로 노선이 단축되면서 교통 취약계층의 접근성이 침해당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염려했다.


기사가 돈벌이가 안 된다는 이유로 이동권을 박탈하는 코레일의 행태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나는 비둘기호, 무궁화호로 통칭되는 완행선이 우리에게 새겨놓은 느림의 그리움이 알량한 자본의 논리에 압살당하는 듯해 안타깝다. 속도와 편리, 영리로 모든 걸 재단하는 시대로 변했지만 세상 모든 풍경을 세밀화로 보고 싶어하는 누군가는 아직 있다. 완고하지만 한없는 그리움을 품었던 「철도원 」속 늙은 역장처럼 누군가는 나뭇잎의 색깔과 공기의 온도와 바람의 냄새가 모조리 다 기억하고 싶을 지도 모른다. 그것들을 제공해 준 무대가 점점 사라져 간다. 돈다발만 무성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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