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이었다. 애연가로 소문난 한국담배소비자협회장이 페이스북에 금연 사실을 공개했다는 가십거리 기사(한겨레신문, 2017.09.01.)가 화제였지만 나는 시큰둥했다. 그 해 3월 전격적으로 금연을 감행한 뒤로 심각한 금단 증세랄 건 별로 못 느꼈지만 산발적으로 불쑥거리는 흡연의 유혹을 잠재우는 데는 신경이 은근히 쓰여서였다.
대학 입학해서 26년을 이어온 흡연벽이 내게 아주 부정적이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불투명한 미래에 직면해 잠시 숨을 돌리며 전열을 가다듬을 짧은 여유를 건네준 건 한 대의 담배였다. 예를 들어 볼까. 자대라고 배치받은 곳에 가니 소대원들이 하나같이 헤비급 떡대에 마동석 인상을 한 깍짓동들이라 군 생활 꼬였다고 망연자실해하며 중대 막사 앞에서 줄담배를 연신 피워댄다. 부임하고 몇 달을 말 한 마디 안 하고 담배만 꼬나문 소대장을 적잖이 해괴하게 봤을 테다. 전적으로 그 이유 때문은 아니겠지만 소대장과 소대원들 사이에 한동안 무지와 착각의 벽이 가로놓여져 오히려 별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던 건 인상 구긴 소대장이 하염없이 피위대는 담배 덕이 없지 않다. 결과적으로 구름과자 속에 나를 잘 감춘 택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시원찮은 매상 탓에 장사를 접을지 말지를 고심하던 민락동 포장마차 시절의 한때였다. 그 동네 부근에서 한의원을 운영한다는 고교 1년 선배가 술 마시러 자주 왔다. 무슨 기구한 사연인지 모르겠지만 한때 떵떵거리던 가세가 한순간 풍비박산이 돼 빚잔치 벌이느라 한의원을 꾸리는 그의 얼굴은 늘 허무적이었다. 노는 가락이 남았던지 일행 서너 명을 달고 와서는 포장마차에서 제일 비싼 안주를 시키고는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셔댔다. 학창 시절 학생회장 출신이었다는 그가 나를 기억한다며 아는 척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한 학년에 6~7백 명 하던 시절이었다. 말수 적고 비사교적이었던 후배를 그가 무슨 수로 안단 말인가. 피차 악어와 악어새 관계였다. 고교 후배가 꾸리는 포장마차니 다른 데보다 부담이 없고 적당히 위세 부리면서 복잡한 심사를 술로 달래려는 그나 손님 뜸해 울상인데 그나마 일행 달고 정기적으로 들르는 그가 절실했던 나나 서로 처지가 비슷했으니까(술자리 파할 때쯤이면 함께 온 일행이 술값을 내지 그가 일부러라도 생색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함께 들르는 이들 표정이 어째 늘 떨떠름했다).
하루는 어디서 전작을 하고 왔는지 문뱃네를 풍기며 그가 혼자 포장마차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다짜고짜 오늘은 외상이라며 명토를 박고 술 내놓으라고 재촉했다. 마수걸이가 외상이라는 데 빈정이 상했겠지만 그보다 선배 할애비라도 취객을 멀쩡하게 받아들일 만큼 마음의 여유가 남아 있지 않았던 당시의 나였다. 처음엔 좋은 말로 구슬려 돌려 보내려 했다. 하지만 기껏 술장사 나부랭이가 자기를 무시한다면서 난동을 부릴 때는 나도 거의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피차 결핍된 인간들끼리 너무 소모적이지 않은가. 이런 꼴 당하려고 밤잠 못 자고 술 장사하는 것도 아닌데. 테이블을 뒤엎고 집기란 집기를 다 깨부수는 그를 말리려면 그가 형이라고 떠받드는 민락동 활어직판장 갈매기형(그에게는 둘도 없는 친한 형이면서 나한테는 해산물을 공급해주는 거래처 형이기도 했다)을 부르는 수밖에 없어서 그에게 급히 타전했다. 그를 어르고 달래는 동안 나는 가게를 나와 광안대교가 바라다보이는 민락 선착장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담배를 찾았지만 없었다. 어찌어찌 그를 돌려 보낸 뒤 나를 찾은 갈매기 형한테 담배 한 대를 얻었다. 한 모금 깊게 빨아들인 뒤 후훅 내뿜고 나니 분한 마음이 쓰윽 가라앉았다. 무심하게 갈매기 형이 툭 던진 한 마디가 잊혀지지 않는다.
- 넌 여기서 장사할 팔자가 아니야.
그가 남긴 말엔 많은 의미가 내포됐다. 그 사건 뒤로 얼마 안 지나 문을 닫았으니 장사치로는 실격이라는 의미로 갈매기 형의 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다.
단말마적인 가슴 경련이 엄습하면서도 손에서 담배를 놓지 않았다. 담배가 주는 찰나의 위로를 쉽사리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새벽 무렵 느닷없이 덮치는 호흡 곤란이 주기적으로 괴롭히자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에 몸서리쳤고 더는 지체할 수 없다고 마음을 먹자마자 담배를 꺾었다. 그동안 담배가 내게 선사한 위무를 생각하면 내 변심은 무정했다. 허나 담배에 대한 나의 사랑은 언제부터인가 진부해졌고 애정은 권태로 변질됐다.이미 유효기간이 지나 버렸던 것이다. 어느덧 금연한 지 4년 반이 넘었다. 이젠 욕구랄 것도 없다. 그야말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로 남을 뿐인 담배다. 그건 그렇고 담배소비자협회장은 아직 금연 중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