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선이라고 글 잘 쓰는 정신과 전문의면서 신경인류학자가 있다. 그가 쓴 칼럼을 읽는데 처음엔 무슨 소린가 했다.
"브라운 어텀 시즌의 그루미한 레이니 위크 앤드. 그레이한 스피릿을 달래줄 머스트 해브는 바로 에코 프렌들리 플레인 텀블러에 담긴 엣지 있는 에일 한 잔, 그리고 이오니아해의 샤이닝 오션에서 자란 담은 솔티드 튜니 토프트 라이스 한 스쿱."(박한선, 경향신문,<세상읽기- 시크한 듯 무심하게, 훈민정음>, 2021.10.19.)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영어나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멋대로 집어넣어 수동형 문장으로 바꾼, 허세를 부추기는 무의미한 만연체 문장들로 이루어진 이른바 보그체, 보그병신체와 처음 맞닥뜨리는 순간이다. 해석하느라 한참 고민했는데 필자가 우리말로 바꾼 걸 읽고서야 비로소 이해했다.
"주말에 비가 오길래, 좀 울적해져서 플라스틱 컵에 맥주 한 잔을 따라 놓고 밥솥에서 밥 한 술을 퍼 담아 참치 통조림을 반참 삼아 먹었다."(같은 칼럼)
'무심한 듯 시크하게', '머스트 해브 아이템', '엣지있는'이라는 표현은 흔히 볼 수 있는 보그체의 클리셰란다. 보그체는 왜 나왔을까. 여기서 정신과 전문의면서 신경인류학자인 필자의 저력이 나타난다. 필자의 설명을 들어본다.
- 실질과 상관없이 겉만 흉내 내는 성향을 스노비즘(snobism)이라고 한다. 사실 스노비즘이라는 말 자체가 스노비즘이다. '젠체하는 경향'이라 해도 똑같은 뜻이다. 아무튼, 이런 경향은 패션잡지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두루 나타난다. 일본에서도 이제 쓰지 않는 용어를 여전히 짝사랑하는 법조 문체, 라틴어와 영어가 제멋대로 비벼진 의학 문체, 그리고 냉면처럼 문장을 비비 돌린 후 우격다짐으로 라캉이나 들뢰즈를 얹어 내놓는 사회인문학 문체등이다. (…) 그러나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이제 페아노 공리계가 뭔지 인터넷에서 금방 찾을 수 있다(금방 이해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라캉의 이론은 여전히 애매현란하지만, 그래도 라캉을 배우러 파리에 갈 필요는 없다. 현학적 문체와 배타적 접근성으로 무장한 지식의 독점성은 와르르 무너지고 있다.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으면 누구도 독차지할 수 없다.(같은 칼럼)
칼럼을 읽고 나자 어마뜨거라 황망히 블로그를 열었다. 오백 개가 넘는 게시글을 일일이 읽었다. 내가 썼지만 나도 무슨 말인지 모를 글자와 문장들이 난무하는 글들이 빼곡했다. 노력한다고는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어렵게 써야지만 있어 보인다는 그릇된 생각을 떨치기란 참 어렵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잖나. 쉽게 쓰는 게 보그체보다 더 어렵다. 이오덕 선생의 꾸지람이 무섭다.
글쟁이들의 '문자 쓰는' 버릇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진위는 차치하고라도' 따위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나타나고 있다. 될 수 있는 대로 민중들이 잘 안 쓰는 말을 써서 유식함을 자랑하고 싶어하거나, 적어도 너무 쉬운 말을 써서는 자기가 무식하게 보일 것을 염려하는 것이 글쟁이들에게 두루 퍼져 있는 버릇이다. 이 부끄러운 버릇을 싹 뜯어고치지 않고는 우리 말글을 살릴 수 없다.(이오덕, 『우리 글 바로쓰기』, 한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