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9 백신 2차 맞는다고 하루 쉬었는데 접종한 날보다 다음날이 더 버거웠다. 삭신은 쑤시고 열이 심해서 하루 더 푹 쉬기로 했다. 부친은 부스터샷 신청하셨고 마누라는 1차보다 2차 때 더 멀쩡하더니만 나만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아침 내내 끙끙 앓았다. 식구들 다 빠져 나간 집에 멍하니 앉아서는 밥 한 술 겨우 뜨면서 조간신문을 뒤적거렸다.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오영수 인터뷰만 빼고.
전날 저녁 막내딸과 저녁을 먹으면서 케이블TV를 보다가 드라마 <오징어게임> '오일남'으로 분한 연극배우 오영수(77)가 유재석과 인터뷰를 하는 장면을 시청했다. 오영수 말을 듣고 있던 유재석 옆에 앉은 여자 앵커(이름 모름)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나는 흘릴 만하다고 여겼다. 그의 말에 깊은 울림이 있어서다.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똑같이 말했다.
그는 철학자 에리히 프롬의 <소유나 삶이나>(To have or to be)에 나오는 이야기에 나이를 더해 설명을 이어갔다. 산길을 걷는 나그네가 꽃을 만났을 때 젊은이는 소유의 갈망으로 그 꽃을 꺾고, 40~50대는 소유욕을 버리지 못해 뿌리째 꽃을 캐어 자신의 정원이나 뜰에 심고, 70~80대가 되면 그 자리에서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한다는 것이다. 오씨는 "인생이 그런 것 같다"며 "크든 작든 많이 받은 삶, 이제 (인생이) 얼마 안 남았는데 될 수 있으면 주자 하는 마음으로 산다"고 말했다.(<박주연의 색다른 인터뷰-'깐부 할아버지' 배우 오영수>, 경향신문, 2021.10.20.)
그에게 호감을 느끼는 까닭이 유명세를 타는 바람에 섭외가 몰려드는 광고를 모두 고사했다는 사실이 신선해서가 아니다. 연극 인생 54년 간 출연한 작품이 200편이 넘는 연극계의 '살아 있는 역사'여서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여생을 아름답게 보내고 싶어하는 그의 소박한 모습이 나를 가슴 저미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말 중에 아름다운이라는 말을 그는 참 좋아한다고 유재석과 인터뷰할 때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도 똑같이 밝혔다.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사회, 아름다운 사람…. 내가 언젠가는 무대를 떠날 것 아닙니까. 그때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우면 좋겠다고 생각해요."(같은 인터뷰)
그가 밝힌 '아름다움'에서 어떤 기시감이 일었다. 오영수의 '아름다움'과 별반 다를 거 없는 뜻으로 나를 사로잡았던 '아름다움' 말이다.
미美는 글자 그대로 양羊 자와 대大 자의 會意입니다. 양이 큰 것이 아름다움이라는 것입니다. 고대인들의 생활에 있어서 양은 생활의 모든 것입니다. 생활의 물질적 총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고기는 먹고, 그 털과 가죽은 입고 신고, 그 기름은 연료로 사용하고, 그 뼈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한마디로 양은 물질적 토대 그 자체입니다. 그러한 양이 무럭무럭 크는 것을 바라볼 때의 심정이 바로 아름다움입니다. 그 흐뭇한 마음, 안도의 마음이 바로 미의 본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부언해두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아름다움'이란 우리말의 뜻은 '알 만하다'는 숙지성熟知性을 의미한다는 사실입니다. '모름다움'의 반대가 아름다움입니다. 오래되고, 잘 아는 것이 아름답다의 뜻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새로운 것, 잘 모르는 것이 아름다움이 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이 아니면 결코 아름답지 않은 것이 오늘의 미의식입니다.(신영복,『강의』, 돌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