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빨리 냉정을 찾았다. 가게에서 부대끼다 보니 결국 딱 그 정도 점수만 받을 수준이었음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불합격을 확인했을 때는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일긴 했다. 한 번 떨어져 본 시험은 살면서 몇 번 있었지만 연속해서 두 번씩이나 고배를 마신 적은 별로 기억에 없어서다. 한 번은 실수일 뿐이라고 마음을 달래며 다시 전열을 정비해 3개월을 와신상담했음에도 결과가 왜 이 모양인가, 얼마나 대단한 기술력을 요하길래 이다지도 까탈스럽게 구는 건지, 나 원 참.
시험을 치르고 들고 온 가발을 본 아버지가 굳은 표정으로 한동안 말씀을 아끼셨다. 그러다 시험 결과가 나오기 며칠 전 감독관 같은 표정으로 한마디하셨다.
- 반반이라고 본다.
솔직히 나도 썩 자신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60점만 넘기면 합격인 절대평가가 규정이라고는 하지만 당일 응시 인원 중에 많아야 40% 정도만 합격을 시키는 상대평가 냄새가 짙은 이용사 실기 시험에서 앞 서열에 끼지 못한다면 합격을 장담하지 못한다. 감독관들에게 어필이 될 확실한 실력을 보여 주지 못한다면 암만 합격 점수에 근접했더라도 더 나은 실력자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다. 그날따라 더 자신이 없었던 건 응시 정원(이용사 실기 시험 일정은 3주에 걸쳐 오전, 오후로 나눠서 하루 2번씩 치르는데 응시자는 인터넷으로 원하는 날짜와 시간대를 지정할 수 있고 지정일시의 응시 정원은 10명)을 꽉 채운 열 명의 응시생들의 면면을 보자 느닷없이 주눅이 들어서였다. 그 열 명 모두는 그날 시험장에서 난생처음 보았고 그들이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는 더더욱 알 길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쩌면 나는 일면식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들의 풍모조차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빈약한 실력을 스스로 드러냈는지도 모른다. 결국 내가 나를 믿지 못하는 최악의 심리 상태에서 지고 들어갈 게 뻔한 시험이라면 그 결과는 안 봐도 훤한 것이니.
당신의 노동 연한을 감안한다면 마음이 급한 아버지였다. 하루라도 빨리 가업을 잇게 하자면 당신 기술의 반만이라도 따라와야 한다. 그래야 가게를 자식에게 넘겨도 단골이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그러자면 향후 로드맵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아버지는 골머리깨나 앓았을 테다. 이발 학원에 들여놓을 때 서로 죽이 착착 들어맞는 인연이 오래된 원장한테 자격증 취득과 실무 기술을 병행하도록 주문한 건 아버지였다. 아버지만큼이나 성질이 급하고 다혈질인 원장의 닦달 덕분에 생소한 이발 기술이나마 순조롭게 익혀 나갔다. 하지만 그게 소기의 성과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몇 개월 속성으로 배웠다고 당장 후다닥 해낼 수 있을 만치 호락호락한 기술이 아니니까. 그럴 것 같으면 너나없이 모두 이발사가 되게? 그걸 뻔히 알면서도 나는 착각을 하고 만다.
학원은 두 반으로 나눠져 있었다. 자격증 대비반과 실무반. 자격시험을 대비하는 이들은 사람 머리가 아닌 가발을 앞에 두고 조발->면도->탈색 또는 염색->세발 및 트리트먼트->정발(드라이)->아이론 펌으로 이어지는 시험 과정이 숙달될 때까지 반복적으로 연습한다. 그에 반해 실무반은 이용 혹은 미용 자격증을 취득했음에도 조발, 특히 요즘 조발의 대세인 바리캉(들리기는 왜색이 짙지만 불어임, 영어로는 클리퍼)을 활용한 커트 기술을 익히려는 이들이 실제 사람을 모델로 연습을 한다. 무료 이발을 해주는 학원으로 오랫동안 정평이 나 있어 역병으로 인해 모든 게 산개된 세상으로 갑자기 변했음에도 학원은 돈 안 들이고 머리를 깎으려는 사람들로 늘 문지방이 닳았다. 첫 번째 실기 시험에 낙방한 뒤 원장은 내게 커트 기술을 전수했다. 그리고는 자격증 대비와 실무를 병행하라고 했다. 두려웠던 처음과는 달리 가발 대신 사람 머리를 앞에 두고 나는 갈수록 대담해졌다. 두상에 따라 달라지는 스타일을 요령껏 맞추면서 제법 자신감도 생겼다. 알량한 잔기술이 마치 대단한 내공인 양 으스대는 나에게 동경의 시선을 보내는 실무반 학원생들을 아래로 쳐다 보며 우월감에 도취됐다. 그래 봐야 오십보백보이고 거기서 거기인 무리들 사이에서 말이다. 자격증만 따면 된다. 자격증만 따면 아버지 밑에서 시다 노릇을 하느니 아예 내 가게를 차리겠다. 두 번째 실기 시험을 앞두고 망상은 하늘 높은 줄도 모르고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12월 첫째 주 일요일에 시험을 치르고 그 다음 주 수요일부터 바로 아버지 가게로 나갔다. 가게에서 주는 유니폼을 입긴 했어도 실무는 당연히 배제되었다. 그저 쭈뼛거리며 당신의 활약상만 물끄러미 지켜볼 뿐이었다. 하루는 백발이 무성한 노인 손님이 들어오자 기계적으로 커트보를 친 후 가만히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가 작업대 위 바리캉을 가리켰다. 깎아 보라는 무언의 지시였다. 의연한 척 나는 장가위부터 들었다. 학원에서 하던 대로 장가위로 지간을 잡고 틴닝 가위로 머리카락을 솎아낸 뒤 바리캉을 들어 가이드라인, 터치, 트리밍 순으로 손님이 원하는 스타일을 완성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어디서 굴러온 개뼉다구인지 몰라도 지불할 요금값을 하는지 어디 한번 두고 보겠다는 듯이 정면 거울에 비친 나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노인의 시선을 발견한 순간, 다리가 후들거리고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면서 헛가위질만 허위허위 해대고 말았다. 보다 못한 아버지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아마 털썩 주저앉았을지 모른다. 여긴 무료로 봉사하는 학원이 아니고 제 돈 내고 기광도 부릴 살벌한 현장, 가게란 말이다!
시험 결과 발표날인 크리스마스이브 아침에 불합격임을 확인한 아버지는,
- 시험 때 깎았던 가발 뒷선을 보니 네가 스포츠형이라고 조발한 게 상고머리였어. 또 명암(그러데이션)도 명확하지 않고. 다른 기술이 암만 좋아도 조발 비중이 절대적인 자격시험이다 보니 가발만 놓고 봐서는 반반이라고밖엔 말할 수 없었다.
- 시험용 따로 커트 실무 따로 기술이란 건 없다. 가위로 하건 바리캉으로 하건 사람 머리 깎는 이치는 똑같다. 왜냐 하면 사람 머리는 둥그니까. 목덜미에서부터 손님이 원하는 가이드라인까지는 빗을 천천히 일직선으로 올리다가 곡선으로 굽어지면 원을 그리듯이 궤적을 그리면서 가위든 바리캉을 놀리는 게 원칙이다. 그래야 머리 모양이 어색하지 않다. 헌데 시험 때 네가 깎았던 가발은 어설프게 흉내만 냈을 뿐 이도 저도 아니었다. 불합격이라 아쉽지만 첫 번째 시험 때보다 점수를 많이 끌어올린 것만으로도 장하다. 너무 애석해하지 마라. 지난 5개월 동안 학원에서 기초를 단단히 다졌다고 치자. 길게 보고 가자.
가게 한 구석에 세워 둔 삼각대 위에는 가발이 항상 대기하고 있다. 그날그날 아버지가 가르쳐 주는 기술을 바로바로 연습하기 위해서다. 그러다 손님이 들어오면 하던 걸 멈추고 커트보를 치는 따위 사전 준비를 마친 뒤 아버지가 깎는 걸 진지하게 쳐다본다. 커트 속도가 광속급이면서도 거의 완벽에 가까운 완성도를 자랑하는 아버지인데 백문이불여일견하려는 아들을 위해 요즘엔 완급을 상당히 조절한다. 이 바닥에서 통하는 경구가 있다. ‘고수의 기술을 보고만 있어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 시험을 치르고 3주 넘도록 아버지 기술을 가까이서 목도한 나로서는 그 말이 진리임을 알겠다. 손님으로 북적거리던 가게가 한가해지면 나는 다시 삼각대로 돌아간다. 그리고 어김없이 왼손엔 빗을 오른손엔 가위도 들었다가 바리캉도 들면서 오늘 배운 기술을 반복해서 연습한다.
다음 시험은 해를 넘겨 4월에 있을 게다. 아버지와 나는 세 번째 시험 때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작정이다. 어정쩡하게 흉내만 내다 마음 졸이며 결과를 기다릴 게 아니고 제대로 된 기술을 부려 제대로 된 점수를 받아 통쾌하게 시험에 통과하는 것과 어떤 손님이 됐든 이발 요금이 아깝지 않을 기술력으로 '한몫'하는 실무자로 거듭나는 것. 머리카락을 물고 빗을 일직선으로 올리는 손놀림이 처음보다는 다소 유연해졌다. 손이 점점 풀리는 징조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