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갓집 마당

by 김대일

시골집이 대체로 그렇듯 내 처갓집도 마당 넓은 집이다. 충북 음성군 생극면이라는 고추와 복숭아가 특히 유명한 고장이다. 주변에 산업단지가 들어서고 근기(近畿)해서 베드타운으로 점점 각광을 받는지라 요 몇 년 새 시골 풍경과는 썩 어울리지 않는 원룸 건물들이 불쑥불쑥 올라가는 건 영 마뜩잖다.

그건 그렇고 도회지 생활에 젖어 버린 자손들의 끊임없는 민원에 못 이겨 구식 푸세식 대신에 좌식으로 된 이동식 화장실을 대문 밖에 들여 놓은 것 외엔 고택 그대로를 고수한, 역 기역 자 형태인 처갓집은 다시 말하지만 마당이 참 넓다.

집 밖에서 자물쇠가 있는 둥 마는 둥한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대지의 7할 이상을 차지하는 마당이 팔자 편하게 누워 있다. 그 마당을 절반으로 나눠 오른편으로는 상추, 배추, 쑥갓, 깻잎, 파 따위를 심은 텃밭이 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요즘은 뜸하지만 장모 생신날이 끼어 있는 6월과 김장 담그는 11월 무렵에 틀림없이 처갓집을 찾으면 돼지고기, 소고기를 실컷 구워 먹는 만찬이 벌어지고 쌈야채는 텃밭에서 따다 먹으면 그만이다. 마당의 나머지 절반에다 식탁으로 개조한 꽤 큰 네 다리 책상을 깔고 장모를 위시한 식구들(처갓집 형제는 9남매다. 그들의 배우자, 자식들이 다 모이면 서른 명을 가뿐하게 넘기지만 장인상 이후로는 모두 모인 적이 없다. 그래도 장모 생신날 따위 연례행사 때면 찾는 인원이 기본 열 명 이상)과 탁 트인 공간에서 식사 상을 차리면 분위기로는 고급 페밀리 레스토랑도 별반 부럽지 않다. 시골 정취에 흠뻑 취한 저녁 바베큐는 술로 한 번 더 취하게 되고.

앞마당에 비해 스케일로는 견주지 못하더라도 뒷마당은 그것대로 아기자기하다. 간장, 된장, 고추장 따위 처갓집 손맛의 원천들이 장독대에 잘 정렬되어 있고 매실나무, 감나무가 떠억 하니 자리를 잡아서는 옆집과 자연스럽게 경계를 짓는다. 원체 말수 적은 고령의 장모는 당신 댁에서 제일 멀어서 더 안쓰러운 부산 7번 딸 내외한테는 특히 뭐든 더 바리바리 챙겨준다. 그럴 때면 앞마당에 있는 곳간 안을 우선 헤집고 나서 뒷마당으로 슬그머니 발길을 옮기는데 갔다 오기만 하면 두 손이 한가득하다. 앞마당 곳간은 알아도 뒷마당 곳간 있다는 소릴 못 들었고 탐문 수색을 암만 해봐도 그런 공간을 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아무래도 노친네만 아는 비밀 창고가 따로 있는지 몰라. 아무려면 어때. 먼 타향에서 고생하는 딸을 위해 베푸는 애틋한 모성애 덕에 좀체 몸무게가 빠지지 않는 건 나니까. 자랑 좀 하자. 우리 처갓집에서 나오는 산물은 뭐든 다 맛있다. 아무개 식품회사 광고처럼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뭐라고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문제지만, 쩝.

처갓집을 방문한 날, 밤이 이슥해지면 나는 방을 나와 앞마당을 거닐곤 한다. 그날따라 보름달이 휘영청 밝게 떠 있어 주면 미장센으로는 금상첨화겠다. 고즈넉한 시골의 밤공기를 폐 속으로 꾸역꾸역 집어넣으면 별로 가진 것도 없으면서 세상 다 가진 놈마냥 행세하고 싶어진다. 머리가 맑아진다는 느낌은 그때만 확 닿고는 사라진다. 머리도 맑아지고 가슴도 빵빵해질 즈음 동서 중 한 사람이 술 먹다 말고 달밤의 체조 할 일 있냐고 지청구를 해대면 짧았던 한밤의 잠행도 끝이 난다. 마당 없는 집에서 살았고 사는 나는 그 공간이 주는 아늑함과 풍요로움, (꼴같잖지만)창조적 영감으로 행복에 겹다. 그래서 앞마당을 거니는 밤이면 꽤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마누라한테 내일 하루 더 있다 가자고 할까 하고 말이다.

신문을 넘기다가 희한한 그림을 발견했고, 그림을 설명하는 글을 읽으면서 참으로 기발하다 싶었다.


단독주택을 마당과 함께 층층이 쌓아 만든 고층아파트는 마치 수직마을을 연상시킨다. 이 구상은 건축가가 아닌 한 만화가에 의해 1909년 미국의 저명한 라이프지에 게재되었다. 이것은 당시 등장한 철골 기술을 토대로 마천루의 이상적 형태를 묘시한 상상도이다. 가늘고 경쾌한 철골 기둥에 의해 원래 땅의 크기와 같은 각 층 바닥면이 84개 층 높이로 증식되어 층마다 다채로운 집과 마당이 함께 들어서 있다. 코로나가 가속화시킨 집에 대한 해답은 전통 주택이나 수직마을과 같이 모두 과거에 나와 있으나 우리가 잊고 있던 것일까.(조진만(건축가), 경향신문, 2021.01.07, <조진만의 도발하는 건축>에서)


비록 상상도이긴 하지만 요즘 같이 틀어박혀 살 수밖에 없을 때 그렇게라도 내 집 앞에 마당이 있으면 답답한 심사는 그나마 해소되지 않을까. 처갓집 앞마당에 심은 상추, 쑥갓, 깻잎, 당근 따위를 그대로 옮겨 와서는 그 넉넉함으로 미친 놈 마냥 헤실헤실 웃어 자빠지고 싶다. 물론 휘영청 보름달이 떠 있어 주면 미장센으로는 금상첨화겠다.

마천루 상상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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