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 보이면 손님이 무시한다면서 가발을 강권한 아버지였다. 가발이 이용업에 끼치는 지대한 영향을 단단히 체득한 선험자의 일리 있는 극성에 못 이기는 척 단골이라는 가발 가게를 통해 한 달 넘게 머리에 이고 다니는 중이다. 처음 한두 주는 가발을, 그것도 자의로는 결코 시도조차 하지 않을 퍼머로 스타일링한 가발을 덮어 쓰고 거리를 활보하는 내가 여간 어색하고 민망한 게 아니었다. 게다가 이 따위 알량한 눈가림으로 감춰야 할 만큼 성근 내 머리가 꼴불견인가 하는 회의감마저 들어 심사가 복잡했다. 남의 돈 벌어먹기가 어디 쉽냐는 아버지의 냉철한 현실 인식조차 큰 위로가 되진 못했다.
하지만 적응하는 동물이 인간이라던가.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가발과의 동거가 이후 이어지면서 일단 사람이 점점 무뎌졌다. 그러다 거울 앞에 서서 가발 매무시를 가다듬는 시간이 늘어나고 스타일링을 거드는 헤어젤, 무스, 스프레이를 능숙하게 매만지는 내가 꽤 그럴싸하게 보이자 가짜가 진짜를 구축(驅逐)하는 게 아닌 진짜 위에 가짜를 구축(構築)하는 것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음을 알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대놓고 뻐기는 강단하고는 거리가 먼 심보다 보니 하다못해 퇴근길에 집 앞 슈퍼에 들르더라도 집으로 우선 가서 가발을 고이 벗어 놓은 뒤 모자를 대신 눌러 쓰고 다시 나가는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복용하는 혈압약이 똑 떨어졌다. 2005년 고혈압 판정을 받은 뒤로 한 달에 한 번 어김없이 들르는 근처 개인병원 건물 앞에서 같잖은 고민에 휩싸였다. 집에 들러 벗어두고 다시 나올까 아니면 그냥 들어갈까. 그냥 들어가면 원장과 간호사(한 달에 한 번 한 달 치 약을 타니까 일 년이면 열두 번, 15년 넘게 꼬박 180번 이상은 꾸준하게 드나들었던 나를 봐온 작자들인지라 내 탈모 과정을 마누라만큼이나 똑똑히 목도했음이니)가 사뭇 다른 양상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쨌든 단골손님인데 설마 꼴사납다는 따위 리뷰야 지껄일 리 만무하겠지만, 살가운 원장에 비해 살짝 까칠한 간호사가 보내는 시니컬한 눈길을 나는 어떻게 소화할지. 별쭝맞은 고민 탓에 꽤나 서성댔을 게다. 에이, 어차피 맞을 매 일찍 맞는 게 속편하겠다 싶어 그냥 들어갔다.
- 어때요? 어울립니까?
병원 문을 밀고 들어서는 나를 훑던 간호사 눈이 무료한 오후를 일거에 전복시킬 재미진 것을 발견한 양 반짝반짝 빛날 즈음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뭐, 우리야 지영이 아빠를 매번 봐왔으니까. 신경이 많이 쓰였나 봐요.
기선을 제압당해 김이 샜는지 간호사는 건조하게 반응했다. 바라던 바라 처방전을 받아 챙기고 후딱 병원 문을 나섰다. 다음 관문은 약국인데. 원래 약사로부터 운영권을 임차한 젊은 남자 약사는 작년 이맘때 치질로 고생하던 나에게 치질 대처 방법을 알려 주면서 얼굴을 튼 사이다. 약사 옆 사무원은 큰딸의 친구 엄마여서 약국을 들를 때마다 아는 척을 해야 하고.
- 어때요? 어울립니까?
또 선수를 쳤다. 약사가 처음엔 무슨 소린가 싶어 어리둥절해하다가 갑자기 풍성해진 머리숱을 보더니 그제서야 아하! 한다.
- 이게 전부 인모라고요? 정말 감쪽같은데요.
이 양반 그리 안 봤는데 립 서비스가 제법이로군. 가발에 관한 시시껄렁한 잡담이 오가는 사이 큰딸 친구 엄마가 약제실에서 나와서는 한 마디 거들었다.
- 십 년은 젊어 보여요. 정말!
처음에는 젊어 보인다는 말에, 약국을 나와 집으로 향하는 중에는 '정말'이라는 단어에 그야말로 고무되었다. 가발이 발휘하는 시각적 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건 물론이고 그게 결코 작위적이지 않다는 선언이 아니고 달리 무엇인가!
유전학을 잘 몰라 근거를 대지는 못하겠지만, 건너뛰든 이어지든 후대가 선대 탈모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자식이 부모 발가락을 닮을 확률만큼 농후하다는 걸 내 경험 상 말할 수 있다. 일명 장교머리라고 해서 양 옆머리를 바짝 치켜 올려 자르는 깔끔한 헤어스타일을 고수하면서도 하루가 다르게 풍성해지는 머리숱을 주체하지 못하던 한때, 물론 지가 무슨 머털도사라고 머리카락에서 신묘한 힘이 솟는 것도 아닌데, 샘솟았던 그 헌걸찬 자신감은 슬금슬금 빠지는 머리카락과 더불어 속절없이 사라졌다. 머리털이 빠진다고 싹수머리까지 없어지진 않으련만 바람 빠진 풍선같이 사람이 갈수록 주눅이 들어갔던 게 사실이다. '아버지, 나를 왜 이 모양으로 낳으셨나요?' 툴툴거려봤자 '얘야, 그 피가 어디 가겠니?'로 응수하며 불가역적인 운명을 가발이라는 대체재를 대신 결재해 주는 것으로 퉁치려는 아버지에게는, 더딘데다 타인의 호평에 부화뇌동하는 감이 없진 않지만, 가발에 대한 나의 인식 개선은 분명 환영할 만한 변화다. 처음에 느꼈던 불쾌한 이물감을 대강 극복하고 한 달이 넘은 지금 나는 개심해 열광적인 가발 예찬론자로 거듭날 태세다. 가발이 주는 긍정적이고 호의적인 효과, 이를테면 한 살이라도 더 젊어 보이거나 젊어졌다는 착각으로 인한 자신감 분출이 일상에 더없는 활력을 제공한다는 점을 힘주어 말할 수 있다. 내 비록 가발 회사의 전속 모델이 아니라 하더라도.
발칙한 글 솜씨로 우리 시대의 특출한 에세이스트로 부상한 김영민 교수의 신작 『공부란 무엇인가』에는 대머리의 개념에 대해 교수와 학생들의 토론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 그 글의 마지막 부분에 작가가 중국에서 열린 학술 대회에 참가했다가 북한 여성 한 명과 나눴던 대화를 기억하는 내용이 있다. '북한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남자는 어떤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에 그녀는 주저 없이 '인격이 훌륭한 남자들'이라고 대답했다. 작가가 다시 인격이 훌륭하면 다른 것들은 상관없냐고 묻자 그녀는 여전히 주저 없이 '돈이 없어도 인격이 훌륭하면 여성들이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다시금 '남자가 대머리여도 상관없어요?' 묻자 갑자기 그녀가 주춤하고, 짧은 침묵이 흘렀다. 벌목 중인 야산과 같은 작가의 두피(김영민 교수는 탈모가 거의 완성된 상태이다. 검색해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를 흘낏 본 뒤, 이내 '대머리여도…상관없습니다!'라고 소리 높여 대답했단다. 작가는 '어떤 것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깨닫는다고 하여, 사회적 현실이 곧 변하지는 않는다. 변화란 쉽지 않다. 뿌리 깊은 인간의 열망에 호소할 수 있을 때만 변화가 가능할 게다. 나는 북한 사회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그 짧은 침묵을 떠올린다'면서 글을 맺는다.(김영민, 『공부란 무엇인가』, 34쪽)
결단코 머리가 민숭민숭한 채로 돌아다녀선 안 되니 가발을 쓰건 흑채를 확 뿌리건 특단의 조치가 불가결하다는 의미의 글로 나는 받아들이겠다. 홀아비 사정은 과부가 알아주고 대머리 마음은 대머리가 아는 법이니까.
<20년 전의 나 VS. 가발을 쓴 지금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