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쯤이면 같은 과 나온 남자 대학 동기들 송년 모임 일정 잡느라 깨톡창이 간만에 불이 나야 한다. 그것도 전통이라고 다른 날은 몰라도 묵은해 버리는 날만은 출석률이 제법 높았다. 그렇다고 식당 연회석을 꽉꽉 채우고도 모자라 식당주인한테 보조의자를 닦달할 만치 성황이냐면 그건 또 아니라서 참석하겠노라 전날까지 다짐해놓고선 한두 녀석 당일 공수표라도 날리면 미리 장소 섭외한 총무 안색을 눈 뜨고는 못 봐줄 정도로 양손 겨우 꼽을 정도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구랍 모일에 모여서 한 해를 마무리한다는 게 머리에 박힌 지 십여 년은 좋이 넘었다. 국어교사로 밥 벌어먹고 사는 동기들이 대다수라 수능 시험일이 일정을 저울질할 잣대가 된다. 보통은 수능 치른 달 마지막 주나 그 다음 주 금요일로 모임 날을 맞춘다. 올해라면 12/3이나 12/10 중 하루를 맞추려고 눈치싸움에 여념이 없어야 한다.
송년모임이라고 거창할 거 없다. 유서 깊은 접선 장소인 동래역 메가마트 후문에서 집결하면 횟집 가서 일 잔하고 맥주로 입가심한 뒤 각자 고잉 홈이다. 간혹 그날의 흥부자가 3차를 책임지겠다고 을러대면 못 이기는 척 따라가 밤이 새도록 기분 낸 적이 없지 않다. 아니 요 몇 년 전까지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허나 대사를 도모하는 것도 아니면서 문뱃내 풍기며 새벽에 고양이 걸음으로 살금살금 들어오는 웬수덩어리를 도끼눈으로 쏘아보는 마누라 등쌀도 버겁거니와 놀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건만 마음같이 안 따라주는 저질 체력 탓에 해를 넘길수록 본의아니게 사람이 착실하게 되고 만다.
착실한 것까지는 바람직한데 너무 착실해서 소원해지면 곤란하다. 중견의 위치에 선 이들로서는 마지막 불꽃을 태울 시점이 딱 요맘때다. 교사로 승승장구하던 이는 교육청 장학사가 되어 교육행정가로 기반을 닦은 뒤 교감, 교장이란 정점에 올라서야 대미를 장식했다 할 수 있다. 학원가에 투신한 이는 막 사업자등록증에 제 이름을 올리고 학원생 유치에 혈안이 되어 동분서주한다. 기간제 교사를 막살하고 복지공무원으로 변신한 이는 신출내기 티를 벗기 위해 자기보다 어린 고참 눈치를 살필 필요가 있다. 이도 저도 아닌 나는 이발사로 평생 벌어먹으려고 이 가게 저 학원을 전전하는 신세가 된 지 꽤 됐다. 근근이 명맥만 유지하는 송년 모임은 그러니 참석자도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한 해가 저물 무렵이면 습관처럼 우리는 모였다.
올 6월 섭이가 죽었다. 동기들 중에서 가장 명망 높고 잘 나가던 녀석이었다. 부산 교육계에서 녀석 이름을 모르면 간첩일 정도였으니까. 녀석이 중심을 잘 잡아 준 덕에 동기 모임도 무난했었다. 요 몇 년 녀석이 모임을 하드캐리했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큰형 같던 녀석이 별세한 뒤로 우리는 별안간 모두 서로 모르는 사이가 되어버린 듯 무심해진다. 언제 모이기라도 했냐는 듯 철저하게 격조하다. 그 전조는 섭이가 갑자기 발병해 투병하던 두 해 전부터 나타났지만 애써 외면했다. 섭이가 병석을 훌훌 털고 나으면 곧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녀석이 황망하게 먼저 떠남으로써 우리들의 관계는 종언을 고한다. 올해라면 12/3이나 12/10 중 하루를 맞추려고 눈치싸움에 여념이 없어야 하는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아무 말이 없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갈 것이고 우리들은 이대로 늙을 것이며 잊혀질 것이다. 구랍 모일의 전통적인 송년 모임도 그렇게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