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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후배

by 김대일

두 해 후배인 이 아무개는 마흔 초반까지 승승장구했다. 대양같은 야망과 승부사적 기질, 탁월한 수완으로 똘똘 뭉친 그는 내가 나온 대학교 ROTC 출신 중에서 한때 가장 촉망받는 후배 중 하나였고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그는 오성급 호텔을 소유하는 게 인생 최고의 목표였고 그걸 이루기 위해 돈을 모았고 심혈을 기울였다. 맥주 회사 영업사원으로 시작해 수억 원을 번 특급 보험설계사로, 고급 레스토랑 경영자로 변신하기 무섭게 마이스 산업(MICE는 기업회의(Meeting), 인센티브관광(Incentive tour), 국제회의(Convention), ​전시(Exhibition)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의 첫머리)에 투신해 관련 회사를 세우는 등 줄기차게 시도했고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성공의 이면에 무리한 투자라는 암초가 늘 도사려서 돈 들어가는 데 비해 나오는 구석이 별로 없는 수익구조를 감당해 내기 어려워 고전 중이라는 소문이 내 귀에까지 솔솔 들려왔다. 이삼 년 전부터는 내왕이 전혀 없는 까닭에 사정이 어찌 변했는지 궁금하지만 미증유의 역병이 돌고부터 연락할 생각을 아예 접었다. 좋아졌다는 사람보다는 죽겠다는 사람이 더 많은 요즘에 녀석도 별수없을 거라 지레짐작한 때문이겠지만 좌절이라는 차꼬에 시름겨워 하는 녀석을 차마 못 보겠는 게 더 솔직한 심정이다.

사년쯤 됐을까. 연락달라는 녀석의 문자를 보고 내가 문득 느꼈던 바를 정리한 글이 블로그 한 구석에 처박혀 있는 걸 우연히 발견했다. 아마 그때부터 녀석의 성공 그래프는 우하향을 그리는 중이었지 싶다. 읽어보니 감회가 새로우면서 우울해진다. 영원한 건 없는 우리네 인생살이, 무엇을 위해 그리 아등바등 설쳤단 말인가. 예전 글 약간 고쳤다.


너의 기질 상, 자의는 아닐 테지만, 다시 오기 힘든 이 안식기를 맞아 전진만 일삼던 액셀러레이터에서 잠시 발을 떼고 너를 정체停滯시키기를 나는 바란다.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그 정체에 조롱 섞인 주변 시선이 삐딱해도 무시하길 또한 바란다. 여지껏 너를 부산하게 만들던 욕망에서 잠깐이라도 살짝 비껴 서서 너를 관조하는 여유 가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네가 위태롭다고 간혹 느꼈다. 파죽지세가 꼭 이로운 것만은 아니니까. 칼을 자꾸 쓰면 칼집이 해지고 총총걸음도 숨은 가쁘기 마련이라 과도한 긍정과 자신감 뒤에 숨겨진 너의 피로감을 간파한 뒤로는 너에게 당장 필요한 건 사업의 성공 이전에 정서적인 휴식이 먼저인 듯해 안타까웠다.

인생은 짧지 않아서 너는 평균 기대수명의 채 반도 안 살았고 여전히 전도유망하다. 오성급 호텔을 거머쥐겠다는 네 포부가 결코 허풍이 아님을 지난 이십여 년 너를 지켜본 형은 잘 안다. 언제나 자신만만하고 헌걸찬 성정을 어떠한 역경이 닥쳐도 모양 빠지게시리 갓길로는 안 가겠다는 깡다구로 읽은 나는 오성급 호텔 스위트룸에서 샴페인을 터뜨릴 네 영광스런 미래는 반드시 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지금 네가 겪고 있는 시련은 마치 미리 예방하는 독감주사처럼 위기관리 능력을 기르는 훈련과정으로 받아들인다면 오히려 유익한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겠다 여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아무개야, 두 살 터울밖에 안 나는 형일지라도 감히 말하건대, 꼭 물질로만 잣대 삼아 재단하기에는 삶이란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사는 이치는 복잡다단하고 변화무쌍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단 하나의 고정된 렌즈로 응시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를 자극하는 영감靈感같은 것들이 나로 하여금 어제의 나를 통해 오늘의 나를 반성하게 하고 내일의 나를 재무장하게 진작시킨다. 그것을 나는 ‘계기契機’라고 부르는데 정작 내가 직면했던 여러 계기의 실체를 정확하게 기억하질 못하겠다. 허나 우연을 가장한 사건으로 나타나건 책을 읽다 불현듯 눈에 뜨인 구절 속에 있건 간에 그 계기로 해서 내가 나를 새삼 되돌아본다면, 아니 그냥 되돌아보는 게 아니고 보다 사려깊게 반성하고 스스로를 진심으로 다독이는 회심이라면, 반성과 성찰의 시간으로 며칠, 몇 달, 몇 년을 보내는 게 결코 헛되지 않다고 나는 장담한다.

형 친구 중에 부산 소재 한 중견 기업 관리부장으로 근무하는 이가 있다. 부산의 몇 안 되는 알짜 기업에서 이십 년 가까이 총수를 보좌하며 사회적 지위를 키워간 그는 유수한 대기업 부장보다 더 큰 권능을 가지고 있대도 지나치지 않다고 방계 회사에서 1년 남짓 근무하며 직접 목격한 사람으로서 확신한다. 그런 그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자꾸 네 얼굴이 떠올라 그의 얼굴에 포개곤 했다. 기질, 성향, 포부가 엇비슷한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역발산 기개세 이면에 숨겨진 허허로움 같은 게 빼꼼 대가리를 쳐든 불안함이 영락없는 데칼코마니였다. 그런 그에게 한번은 큰 불행이 닥쳤다. 집에 큰 불이 났었다. 휴일 집에서 낮잠을 자다가 탈출 기회를 놓친 친구는 엄청난 화마에 쫓겨 아파트 꼭대기층인 제 집 베란다로 몰려 오도 가도 못하는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게 되었다. 부산에서 한 대밖에 없다는 고층 사다리 소방차가 근처 소방서에 마침 있어 즉시 출동, 구조됐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다. 그런데 화재가 난 이후로 그의 행보에 이상이 감지됐다. 기업 총수 버금가는 권능을 가진 자로 위압적이었던 그가 예전에 비해 훨씬 유해졌음을 가끔 가지는 술자리에서 나는 발견한다. 달변가이기도 한 그의 입담은 논리나 확증을 들이밀어 상대의 기를 죽이곤 했는데 말하기보다는 주로 들으면서 상대의 의중을 파악한 다음 힘을 빼고 나긋나긋해진 톤으로 상대의 말을 복기하고서는 ‘ ~~말이제?’ 하며 확인하는 걸 자주 목격했다. 아닌 게 아니라 화재 이후 그는 엄청 변했다. 특히 심중언心中言의 운을 떼자면 꼭 ‘새로 태어난 기분으로 나는 세상을 바라본다’는 말을 서두에 꺼내놓는 그가 이제는 전혀 낯설지가 않다. 엄청난 정신적 경제적 고통을 남긴 화재가 어쩌면 세상을 새롭게 인식하게 만드는 감식안을 그에게 선사한 어떤 계기였을지 모를 일이다.

사설이 장황했다. ‘형님, 전화 부탁드립니다’ 란 메시지를 보고 별 생각을 다 했다. 십수 년을 한결같이 앞만 보고 달려왔건만 근래 재정적인 압박으로 고된 하루하루를 견디는 너로서는 꽉 막힌 속을 뚫고 타는 목마름을 해갈할 정서적인 계기를 찾았을 테고 그 수단으로 네 자존심에 흠집 날 일 없으면서 툭 터놓을 상대로 나를 골랐을 거라는 생각에 미치자 나는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성공이란 단어를 말할 입장은 못 되지만 헤매지 않을 미래를 궁리하려 함께 떠나는 동행자 역할로는 썩 나쁘지 않은 형이라 자부한다. 힘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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