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애타게 찾다가 막상 만났더니 놀리듯 도망가버리는 이상한 악몽을 자주 꾼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얄궂게도 첫사랑 여자였다. 삼십 년이나 지난 과거사가 꿈이란 무대만 달리해 재현되는 게 새삼스럽기도 하지만 영문도 모른 채 당하는 일방적인 절교는 꿈이나 생시나 어쩜 그리 똑같은지 공교롭다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 없다. 배경만 다르고 스토리는 판박인 꿈을 하루 걸러 꾸다 보면 내 정신에 무슨 큰 장애라도 생겼는지 걱정이 태산이다가도 미련 많은 현실의 재반영이 꿈이라고 한다면 아직도 연정이란 게 남았는지 스스로 다그쳐도 봤다. 하지만 가소롭다. 미련이 남은들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나. 어디서 무얼 하는지도 모르는 첫사랑이란 공허한 환상을 좇아 헤맬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미련이라는 것도 그렇다. 아직 끌리는 정이 다문 얼마라도 서로 간에 남아 있어야 미련답다. 즉 쌍방향이어야 미련이라는 것도 로맨스가 되든 불륜이 되든 빛을 발하는 법이거늘 일방적이라면 스토커나 하는 짓이니 참으로 가당찮은 과잉 감정이다. 그럼 허구헌날 마누라 아닌 다른 여자가 잊을 만하면 나타나 갖은 교태 다 부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안면 바꾸고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기를 반복하는 이 희비극 같은 꿈의 정체란 대체 뭐란 말인가.
심리학적 현상 중에 반사실적 사고(counterfactual thinking)란 만약 내가 다른 결정을 내렸다면 현실은 어떻게 변했을지 상상하는 행위다. 만약 그 여자와 헤어지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상상하는 짓이 그 예가 되겠다. 반사실적 사고는 필연적으로 집착에서 비롯된 후회를 동반한다. 그때 그렇게 하지(혹은 되지) 않았다면 하는 후회가 일종의 트라우마로 작용해 좌절이나 불안감으로 변해 사람 속을 내내 긁는 것이다. 물론 과거의 실수로부터 더 나은 의사결정을 배우는 출발점이라는 이점이 없지는 않으나 나처럼 심지 약한 인간은 두고두고 가위눌림이나 당하는 쫄보가 되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내가 꾸는 악몽은 집착에서 비롯된 미망인 것일까. 하긴 다시 못 올 첫사랑에 집착하는 것 자체가 아둔한 짓임에 분명하다.
너는 들어보지 못했느냐? 옛날 바닷새가 노나라 서울 밖에 날아와 앉았다. 노나라 임금은 이 새를 친히 종묘 안으로 데리고 와 술을 권하고, 아름다운 궁궐의 음악을 연주해주고, 소와 돼지, 양을 잡아 대접하였다. 그러나 새는 어리둥절해하고 슬퍼하기만 할 뿐, 고기 한 점 먹지 않고 술도 한 잔 마시지 않은 채 사흘 만에 결국 죽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자기와 같은 사람을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른 것이지,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르지 않은 것이다. (《장자》<지락至樂>)
장자 글에 강신주는 이렇게 토를 달았다.
장자의 이야기를 읽을 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노나라 임금이 누구나 인정할 만큼 새를 아끼고 사랑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사랑이 끝내는 자신이 사랑하던 새를 죽음으로 이끌고 맙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에는 어떤 비극적인 분위기가 있습니다. 사랑이 오히려 사랑하는 타자를 죽음으로 내몰았기 때문이지요. 어떤 이유로 인해 이런 비극적인 결말이 나오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노나라 임금이 사랑하는 새에게 좋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오히려 그 새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치명적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가 자신과 타자와의 차이를 긍정하지 못한다면, 혹은 사랑이 언제나 ‘하나’가 아니라 ‘둘’의 진리라는 사실을 망각한다면, 우리의 사랑 역시 이런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강신주, 《철학, 삶을 만나다》, 이학사, 271~273쪽)
결국 둘이라는 거다. 집착이란 사람을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르는 것과 같아서 종국에는 집착하려 드는 자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역설을 연출한다. 가깝건 멀건 사람 간의 관계는 '자신과 타자와의 차이를 긍정'해야만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다. 어쩌면 내 악몽은 나라는 영역 속에 여전히 그녀를 가둬 놓음으로써 벌어진 예견된 고통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내 무의식의 철옹성에 가둔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이제는 미련없이 풀어줘야 한다는 결론이다. 내 속의 잠재된 나의 그녀가 아니라 그녀로서의 그녀로 멀리멀리 달아나게 냅둬야 한다. 다른 무엇보다 내 원만한 숙면을 위해서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