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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사는 인생

by 김대일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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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권력자가 하인과 함께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갑자기 하인이 비명을 질렀다. 방금 죽음의 신을 보았다는 거다. 신이 곧 자신을 데려가겠다고 위협했다며, 주인에게 도망갈 수 있도록 말을 빌려달라고 애원했다. 말을 타자마자 하인은 큰 도시인 테헤란으로 줄행랑을 쳤다. 자신을 쉽게 찾지 못하도록 말이다. 마음을 진정하고 집으로 들어간 주인, 떠나지 않고 있던 죽음의 신과 마주쳤다. 주인은 신에게 따졌다. “왜 우리 하인을 겁주고 그러오?” 그러자 죽음의 신이 답했다. “위협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밤 테헤란에서 만나려고 했는데, 그가 아직까지 여기 있어서 놀랐다고 말했을 뿐이었어요.

이야기를 이렇게 끝내면 때가 되면 어차피 죽을 덧없는 인생 아웅다웅하며 살면 뭐하겠느냐는 결정론적 메시지로 비춰진다. 괜히 화두로 꺼냈다간 머리통을 쥐어박힌다. 하지만 다음 구절로 뒤를 이으면 반전이 일어난다.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듯이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하려는 바는 첫 번째 인생에서 망쳐놓았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삶의 의미를 갈구하는 인간의 본질은 책임감이라며 던진 행동 지침은 결코 허투루 하루하루를 허비하면 안 될 것 같은 묵직한 교훈을 던진다. 긴장하자. 정신줄 놓고 산다고 콤플렉스에서 해방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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