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환의 시어는 도회적 감성이 물씬 풍기는 생경함으로 전위성 내지 현대성을 확보했다. 하지만 신문 기사만도 못한 시라며 경멸했던 김수영을 두둔하지 않더라도 나이 먹어 읽은 박인환 시는 알맹이는 어디다 두고 없이 겉멋만 든 느낌을 지울 길 없다. <목마와 숙녀>에 등장하는 목마, 숙녀, 버지니아 울프, 페시미즘 따위의 시어들이 명료함을 상실한 사어로 전락해 낡은 책장 구석에 처박혀 연명할 뿐이라고 쓸쓸해하는 내가 그 시를 읽기에는 너무 찌들어버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