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로 이름을 바꾼 회사의 SNS을 한창 이용할 무렵 국민학교 동기가 찍었다는 사진에 매료된 적이 있었다. 남녀가 유별하니 함부로 신상을 물어보는 것 자체가 큰 결례라 여긴 나는 간간이 주고받던 댓글로도 의뭉을 떨지 못했고 계정에서 탈퇴한 이후로는 더더욱 그녀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모른다. 다만 그녀가 올렸던 글과 사진이 온통 별에 관한 것들이어서 천문학 관련 직업이거나 최소한 별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덕후쯤으로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그녀에게 보낸 마지막 댓글은 그녀가 찍은 별 사진 중 하나를 내 글의 배경으로 삼고 싶다는 요청이었고 그녀는 흔쾌히 허락했다. 그 사진을 다시 꺼내 본다.
우주의 탄생으로부터 천문학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거기에 미친 사람들은 우주보다 더 흥미진진한 걸 찾지 못한다. 생성된 것이면 종말은 필연적이라는 생성-소멸의 패러다임에서 우주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우주가 그럴진대 별이라고 별다를까. 밤하늘의 별이 반짝이는 건 그 별이 이미 사라졌다는 걸 의미한다고 한다. 별이 폭발하기 전에 발산한 빛이 지구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 때문에 우리가 그 별을 지금 보고 있을 뿐이라면 우리는 별의 파국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도착증 환자일지 모른다. 불현듯 등줄기에서 식은 땀이 흘러 내린다. 생겨난 것은 사라져 없어진다는 섭리를 받아들이기가 여전히 쉽지 않은 나로서는 천체라는 내 인식의 저편까지 가늠할 엄두가 안 난다. 인식하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공포, 그것이 내가 천문학을 기피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 사진은 정말 아름답다. 별을 두려워하면서도 쏟아지는 별바다에서 정서적 위안을 얻는 위선이 나도 싫지만 좋은 걸 어쩌랴. 한 컷의 별 사진을 찍기 위해 들였을 문 아무개의 노고가 고스란히 사진 속에 깃들어 있어 더욱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