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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밥 먹듯

by 김대일

피실험자들에게 신문 한 부씩을 나눠주면서 신문에 나온 사진 개수를 전부 세어보라는 심리학 실험을 했다. 대부분의 피실험자들은 그 지시에 따라 2분 내에 사진 개수를 모두 헤아렸다나. 근데 신문 2면에는 이미 “세는 것을 중단하시오. 이 신문에는 모두 43개의 사진이 있습니다.” 라고 대문짝만하게 써놓았는데도 피실험자 중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다고 한다. 신문 속 사진 개수를 세는 세부적인 일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전체를 바라보지 못하는 오류’,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꼴이 환원주의적 관점이라 할 수 있다.

『환자혁명』(조한경, 에디터, 2017)이란 책의 요지는 의외로 간단하다. 몸의 이상 징후를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에 대응해 처치하는 대증요법對症療法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사단이 벌어지게 된 근본 원인을 찾아 올바르고도 안전하게 처방해 다스리는 게 합당한 이치이면서 환자 입장에서도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임을 부각시킨다. 이는 의학 본연에 가치에 천착한 대단히 래디컬하면서도 현대 의학 풍토에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혁명적 제언이다.

현대 의학의 정체성은 ‘환원주의적 대증요법’이다. 환원주의는 관찰 가능한 사물이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영적인 세계나 사람의 영혼은 눈으로 본 사람도 없고, 해부학적으로 발견된 적도 없고, MRI나 CT, 초음파로 촬영된 적도 없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존재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자세에 있다. 관찰 불가능한 것을 자꾸 거론하면 ‘비과학적’이라고 손가락질 받는다. 영적인 세계나 정신적인 문제들은 간과되고 무시되기 일쑤다. 모든 걸 수학적으로 계량하고 분석을 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환자혁명』 35~36쪽)

우리의 생명과 건강과 관련해 익히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거나 강요 받은 고정관념이 기실 사실이 아니거나 아닐 수 있다는 점, 윤리적으로 불건전한 세력이 효용이 입증되지 않은 약을 팔아먹으려는 장난질에 환자는 물론이거니와 진료와 처방을 맡은 의사마저 놀아나고 있지는 않는지 의심할 필요가 있다. 의료계 헤게모니를 거머쥔 세력들이야 당연히 음모적이라며 길길이 날뛸 게 뻔하지만 책에서 제시한 근거는 블록이 딱딱 들어맞는 레고처럼 치밀하고도 논리정연하다.

당뇨의 진짜 원인은 인슐린 저항이다. 당뇨병이 악화되는 것은 인슐린 저항이 점점 심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혈당은 그저 인슐린 저항의 증상 중 하나일 뿐이다. 혈당이 문제를 일으키긴 하지만, 혈당만 잡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진짜 본질적인 문제는 인슐린 저항과 그로 인해 혈중 인슐린 농도가 높은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폐렴 때문에 열이 나는 환자의 경우, 문제는 감염이고 열은 증상이다. 이런 환자는 항생제로 감염을 치료하는 것이 올바른 처방이다. 증상에 불과한 고열을 치료해서 감염이 나을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항생제이지 해열제가 아니다. 당뇨도 마찬가지다. 당뇨병에 걸렸다는 것은 인슐린 저항이 생긴 것이 원인이고, 그 결과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고혈당이다. 그런데 현재의 모든 당뇨 치료는 혈당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러니 약물로 혈당을 조절하는 것은 당뇨병을 고치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실제 당뇨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자들의 당뇨병은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되는 것이다. (같은 책, 154쪽)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 존 에이브럼슨(John Abramson)은 『약물 과다 미국(Overdosed America)』(2014)에서 의사들이 어떻게 특정 약물 처방에 대한 의사 결정을 내리는지를 분석했다. 그 과정에서 콜레스테롤 저하제를 예로 들었는데, 의학 논문이라는 것이 제약 회사 광고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이었다. 의학계의 열쇠를 쥐고 있는 오피니언 리더들 중 대부분이 제약 회사와 금전적 관계를 맺고 있다. 대놓고 급여를 받거나 컨설턴트나 자문위원으로 보수를 받는다. 이들의 논문과 글, 강연 등이 의사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상당수가 대학교수들로서 수련의들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콜레스테롤 약물만 놓고 봤을 때, 콜레스테롤 저하제가 여성에게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나이와 상관없이, 콜레스테롤 수치에 상관없이 여성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증명한 연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콜레스테롤 저하제가 60세 이상 남성의 사망률을 낮출 수 있다는 연구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약물 복용이 도움되는 그룹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매우 높은 60세 이하 남성 중 심장마비 경험이 있거나 협심증이 심한 경우다. 이는 전체 약물 복용자의 50명 중 1명 꼴에 불과한 비율이다. 환자들이 스타틴 약물을 복용하는 이유는 의사가 지시했기 때문에 그 조언을 따르는 것이고,미국의 경우에는 TV 광고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약의 득실에 대해 정확히 따져보고 먹는 환자는 거의 없다. 사실을 알면 약 복용을 거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같은 책, 187~188)

엄마 퇴원할 때 조제받은 일주일치 약이 다 떨어져 요양병원에 가서 다시 두 달치 약을 탔다. 아침, 점심, 저녁 복용해야 할 약은 기왕의 뇌졸중 및 파킨슨 약까지 합치면 손가방 하나도 모자랄 만큼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약사가 처방전 약에 대해 설명해줄 때 '약을 밥 먹듯이 하면 더 탈이 안 날까요'라고 물어볼 뻔 했다. 엄마는 혈압약을 조석으로 먹어야 한다. 아침에 1.5알을 먹고 저녁에 또 반 알을 먹는다. 나도 16년째 혈압약을 품고 산다. 혈압이 높대서 먹어 오긴 했지만 그 약으로 인해 파생되는 다른 부작용이 늘 걱정스러웠다. 혈압약으로 예를 들었을 뿐 건강 상의 이유로 먹는 약들은 복용 목적을 달성하려는 가시적인 효험 이면에 치명적인 뒷끝을 동반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나는 늘 불안해한다.

몸은 허튼 짓을 하지 않는다. 우리 몸이 혈압을 올리는 것은 온몸 구석구석에 피를 보내 산소와 영양소를 공급하겠다는 노력이다. 나이 들어서 혈압이 올라가는 이유는 갈수록 심장이 강해져 피를 세게 내뿜기 때문이 아니다. 그만큼 피 상태가 안 좋고 혈관이 건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혈압은 일종의 살겠다는 몸부림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때 오히려 혈압 낮추는 약을 먹는다. (...) 혈압약은 다양한 방법으로 혈압을 떨어뜨리지만 대표적인 방법이 심장 근육을 못 뛰게 막는 것이다. 심장 근육이 약하게 뛰면 혈압은 당연히 떨어진다. 하지만 이 방법이 심장 건강에 더 좋다는 증거는 없다. 심장이 맘껏 뛰지 못하게 거대한 집게로 심장을 집어놓은 것과 다를 바 없다. 심장에 더 무리가 가고 서서히 심장을 죽이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같은 책 165~166쪽)

인류 생명의 구원이라는 거룩한 목적이라고 해도 인위적으로 합성, 조작, 가공된 이물이 자연적이고 생래적인 것에 비해 인간의 몸에 얼마나 더 이로울지 잘 모르겠다. 약을 먹어야 현상이나마 유지할 수 있다는 은근한 협박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면서도 하루에 수십 알의 약을 털어넣는 게 옳은 방법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가 말하는 기능의학에 대해 좀 더 알아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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