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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을 바꾼 이에게 바라는 것

by 김대일

뭐든 열성적으로 덤비면 보기에는 좋아도 자칫 제풀에 지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나부터도 초장엔 질풍노도 같다가도 뒤로 갈수록 시나브로 시르죽는 병통이 고질로 굳어진 바라 이런 용두사미증후군이 무조건 김칫국부터 들이켜고 보는 어리보기의 습성에서 비롯되었다고 타박하기보다는 빨리 이루고 싶은 의욕이 과해 일어난 과유불급의 부작용이라고 항변하고프다. 좀 더 예쁘게 순화시키자면 너무 순진해서 탈이라는 소리겠다.

9개월짜리 단기 계약직으로 구청 직업상담사로 같이 근무했던 20대 후반 최샘(3년 전이니 지금은 30대에 들어섰을 성싶다)은 계약이 만료된 직후 동종업계로 재진입을 노리다 여의치 않자 진로를 바꿨다. 30~40대가 주류인 동료 샘들 틈바구니에서 나이답지 않은 숫기와 기백으로 제 할 바에 열성을 보인 그니가 간호조무사로 갈아타겠다는 의향을 밝혔을 때 좀 뜨악했다. 업종이 판이한 건 둘째치더라도 나이로 보나 열성으로 보나 낫살 더 먹은 여느 샘들에 비해 경쟁력이 높아 도전과 기회의 폭이 상대적으로 더 넓을 텐데 그걸 냅다 던져 버리는 건 좀 성급한 결정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니가 그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을 여기서 주저리주저리 읊는 건 나가도 너무 나간 오지랖이니 그만두겠다. 재주나 실컷 부릴 멍석을 맘 편히 깔아준다면 얼마든지 제 깜냥을 펼칠 잠재력이 충분한 이었다는 아쉬움이 내내 들었다는 말로 대신할 뿐. 한편으로 그 애살에 뭔들 못하겠나 싶은 믿음으로 간호조무사 입문을 격하게 환영하긴 했다. 젊음은 그렇게 당차야 하는 게 맞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새해가 밝고 첫 월요일 아침에 톡이 울렸다. 바짝 공을 들인 간호조무사 자격을 무난하게 취득한 뒤 서울 한 재활의학과 병원에서 근무 중이고 자취를 하면서 타지 생활 적응 잘 해나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잊지 않고 근황을 알려 주는 마음이 기특했고 일도 환경도 다 생경할 텐데 무탈하게 잘 녹아든 것 같아서 대견했다. 타지에서 혈혈단신으로 제 앞날을 새롭게 개척해 나가려는 진취성은 직업상담사로 같이 근무할 때 봐왔던 열성적인 면을 그대로 빼다박았다. 주고 받는 톡에는 다 담지 않은 바람이 있다. 새로운 길이 천직이라는 확신이 든다면 처음부터 너무 힘을 빼지는 말라고. 가늘고 길게 가는 건 얄미운 게 아닌 현명한 처세라고. 대신 마음에 품은 열성만은 절대 꺼지지 않고 은은하게 이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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