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여름 전엔 개업하겠다. 가게는 물색해뒀다. 시장이 가깝고 상가가 밀집한 지역이라 목이 나쁘지 않다. 또 입지에 비하면 임대료가 싸다. 건물주가 호인인지 6년 전에 세를 든 미용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월세가 똑같다. 또 새로 들어올 세입자한테도 올려 받지 않겠다는 약조를 받은 상태란다. 그 미용실을 인수할 거다. 부친이 진작에 물밑 작업을 벌여 계약은 성사 직전이다. 돌아오는 화요일 건물주가 신구 세입자와 삼자 대면하자고 해서 부친과 가서 만날 예정이다. 새로 들어올 사람 면상 한번 구경하자는 명분이지만 됨됨이를 살피려는 의도임을 모르지 않는다. 다른 건 모르겠고 선량한 이미지 하나만은 아직 봐줄 만하니 불한당 같다는 둥 딴지 걸 일은 없으리라.
업태가 엇비슷한 미용실을 인수한다 해서 몸만 쏙 들어갈 순 없다. 가게 구석구석을 내 손에 맞게 다시 꾸미자면 품이 적잖이 들 게다. 벌써부터 부친은 내부 수리 구상에 밤잠을 설치신다. 설 연휴가 지나면 본격적으로 매달리지 싶다. 사업자등록증에는 내 이름자가 박히겠지만 가게는 부친 손에 의해 새롭게 탈바꿈될 것이다. 그게 낫다. 부친의 연륜이야말로 그 어떤 유명짜한 창업 컨설팅을 능가하는 이 바닥의 확실한 보증수표니까.
단 상호만은 내가 짓고 싶다. 이름에는 가게와 가게주인인 나의 정체성이 깃들어 있어서 허투루 지을 생각이 추호도 없다. 이용업에 속해도 이발소가 아니고 단어에서 풍기는 과거회귀적 촌스러움 탓에 상호에 '이발소'를 넣다간 요즘 세태에 장사 글러먹기 십상이라고 어깃장을 놓는 부친이시다. 이발소 시대는 지고 바야흐로 커트 전문점이 대세이니 차라리 '커트 클럽'이니 '맨스 커트' 따위 외래어로 포장하거나 '진짜 사나이', '가위 든 남자' 따위 커트점을 연상시킬 만한 조어가 필요하다는 훈수는 일견 타당한데도 순순히 동조하기에는 못마땅한 구석이 있다. 돼먹지 않은 외래어 남발이 볼썽사납고 상술에 전 듯한 상호가 왠지 천박해 보여서다. 이도 저도 아니고 대안이 뭐냐 되물으면 딱히 내놓을 대답이 현재로선 궁색하다. 이름짓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은 창작 활동이라는 것만 변명으로 남길 뿐. 이 글 보고 혹시 추천할 만한 게 있으면 기탄없이 알려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