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면허증

by 김대일

어느날 토레스란 자가 이발소 문을 열고 들어와 면도를 해달라고 했다. 토레스는 저항군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하는 인간백정이다. 이발사는 저항군을 지지하는 숨은 동조자다. 기회만 닿는다면 토레스란 놈을 죽이고 싶었는데 제 발로 사지에 들어온 놈이다. 손에 들린 날 선 면도칼로 의자에 앉아 있는 놈의 목을 그어버리는 건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하지만 이발사는 갈등한다. 비밀스런 저항군 이전에 엄연히 이발사다. 말끔하게 면도와 이발을 해주는 게 이발사로서의 도리이자 양심이다.

'나는, 그렇다, 살인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당신은 면도를 하려고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자랑스럽게 내 일을 해내는 중이다… 나는 손에 피를 묻히기가 싫다. 비누 거품, 그것이면 그만이다. 당신은 처형의 집행자이지만 나는 한 사람의 이발사에 지나지 않는다.'

면도가 끝나고 토레스가 돈을 지불한 후 문을 나서려다 이발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사람들 얘기로는 자네가 날 죽일 거라고 그러더군. 그 말이 정말인지 알고 싶었어. 하지만 사람을 죽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명심하라구."

콜롬비아 작가 에르난도 테예스의 단편소설 <단지 비누 거품일 뿐>이다. 가죽 띠에 면도칼을 문지르며 날을 세우는 이발사와 천연덕스럽게 의자에 앉아 면도를 기다리는 토레스 사이의 긴장감이 압권이었다. 이발사가 등장하는 문학 작품 중 단연 최고라고 나는 단언한다.

이발사가 다루는 기구는 상대방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을 만큼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 자격증 취득과는 별개로 면허증 발급 시에는 정신질환자, 전염성 결핵환자 및 마약, 대마, 향정신성의약품 중독자 여부를 판별하는 검사를 받고 이상이 없다는 의사 진단서가 필요하다. 그걸 구비하지 못하면 제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고 수중에 돈을 재어 놓고 산들 평생 제 이름자 박힌 가게를 차리기는 힘들다. 수소문해 찾아간 병원에서 소변검사와 흉부 X-선 검사를 마친 뒤 4만 원을 결재하고 받은 건강진단서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 위 사람은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호에 따른 정신질환자, 마약·대마·향정신성의약품 중독자가 아님을 증명함.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란 판정이 났다. 당연한 건데도 증명서로 받아들고 보니 새삼스럽다. 오늘 면허증을 발급받으러 구청에 들를 예정이다. 이발사로서 하자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는 날이다. 나한테는 기념비적인 날이 될 게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옛날 이발소하고는 달리 요즘 남성전문커트점에서는 면도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 가죽 띠에 면도칼을 문질러 서슬퍼렇게 날을 세울 일도 없다. 염려할 바 없다.

작가의 이전글<동행>이라는 TV 프로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