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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Feb 19. 2022

미물들의 권력

   작은 갑충 한 마리가 방바닥을 빠르게 기어간다. 슬쩍 건드리니까 돌연 딱딱하게 몸을 움츠리고 정지해서 꼼짝도 않는다. 갑충은 지금 절박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자기는 죽었다는 것, 더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 그러니 그냥 놔두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몸짓 신호는 거짓말이다. 갑충은 정말 죽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살고 싶어서 짐짓 죽은 시늉을 하는 것이다. 자연조건 속에서 힘없는 것들은 이렇게 살아남기 위해서 삶과는 전혀 반대의 것, 즉 죽음 속으로 도피한다. 이것이 헐벗은 미물들의 육체가 알고 있는 가엾은 생존 전략이다.

   그런데 이 미물들의 육체가 갑자기 강자의 육체를 흉내 내는 경우가 있다. 그건 그 미물들이 권력을 얻었을 때이다. 미물들의 권력은 자기의 권력이 무엇을 위해서 쓰여야 하는지를 모르면 안에 쌓여 있는 원한 때문에 폭력으로 변하기 십상이다. 그 전형적인 모습이 강자 논리만을 배워서 알고 있는 파시스트와 전체주의자들이 보여주는 권력의 양상들이다. 미물들에 지나지 않는 그들은 모처럼 얻은 권력에 의존해서 자신의 사이비 강함을 드러내고 확인하고자 한다. 그래서 약자들에게 동질적 연대감을 느끼는 대신 권력을 자의적으로 휘두르면서 그 약자들을 지배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본성은 여전히 미물성이다. 그 미물성의 정체가 여지없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그건 권력이 그들을 떠났을 때이다. (<김진영, 낯선 기억들-미물들의 권력>, 한겨레신문, 16.12.29. 에서) ​

   

   2016년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청문회에 출석한 김기춘, 우병우를 곤충에 빗대 철학자 고故 김진영은 권력욕을 고찰했다. 미물이라는 원초적인 하찮음이 권력이라는 가면을 뒤집어 쓰고 호가호위하다 그 권력이 떠났을 때 미물성의 정체가 여지없이 드러나고 말았으니 잡은 것 같은데 잡힌 건 없는 권력의 무상함을 간파한 정치인이라면 철인哲人이 되고도 남는다. 

   3월 대선 이후를 상상해보는 게 정치면 기사에 특히 열중하는 것과 더불어 요즘 아침에 생긴 버릇이다. 유투브 한 정치토론회에 나온 유시민의 고백이 머릿속에서 맴맴 돈다.

   

   - 유투브니까 솔직하게 얘기하면, 윤석렬 후보가 될 수도 있지 그렇게 생각을 해요. 내가 지지하는 후보의 낙선을 생각하고 있고 그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를 늘 가지고 응원해요. 그러나 제 마음 속에는 윤석렬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진짜 뒤로 갈 것 같다, 나라가. 저거 대단히 위험하다 그런 생각은 좀 들긴 하죠.

   

   대선 결과에 따라 우리 사회가 돌이킬 수 없는 퇴행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비단 나만 품은 기우가 아니라고 안도(?)한다. 내로남불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부자 몸 조심하듯 퇴영적으로 굴신하는 파란색 정당을 나는 선호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빨간색 정당의 천박한 보수성이 구국의 대안이라고 생각한 적 추호도 없다. 특히 그 정당에서 내세운 대선 후보가 부르짖는 '공정과 상식'은 그가 정치계에 발을 담근 이래 유권자들에게 보여준 행적, 언사, 하다못해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버릇으로 미루어 말치레에 그칠 공산이 커서 진작에 그를 후보군에서 배제시켰다 내 상식 상. 그보다는 검사동일체 원칙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내세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조직 안에서의 경력이 전부인 자가 한 나라의 대권을 움켜쥐었을 때 저지를지 모를 비상식적이고 통제불능인 남용이 나는 몹시 불안하다. 또 숨죽여 지내던 미물들이 상명하복의 피라미드로 기어들어가 사이비 강함을 휘두르는 만행이 재현되지나 않을지 나는 그게 제일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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