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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Feb 21. 2022

전화 한 통화

   배후에 지은 지 좀 되긴 했어도 대단지 아파트촌을 끼고 앉았고 커트하는 김에 염색까지 곁들여도 부담 느끼지 않을 만큼 주머니 깜냥이 되는 중장년층들이 주 단골층이라는 게 알바하는 점방의 특장점이다. 하여 토요일 아침에는 점방 문이 열리기만 기다렸다는 듯이 주5일제 직장인들로 북적인다. 일 년 넘게 똑같은 상황을 겪었으니 익숙해질 만도 한데 아침밥 잘 먹고도 갑자기 위장이 꼬이는 것 같고 발바닥에 티눈이 박인 듯이 토요일 알바 가는 길은 늘 괴롭다. 고될 줄 아니까 괜히 엄부럭을 떠는 거다. 만약 내 점방이 토요일마다 손님으로 미어터진대도 그런 심정일지 요새 부쩍 자문하면 대답은 한결같다. 그럴 리가! 이기적인 감탄고토의 속마음이 여실히 드러나 버려 우습다.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는 옛말 하나 틀린 거 없다.

   아무튼 그제도 5분마다 염색 도포하고 염색 손님 샴푸해대느라 옆구리가 마쳐 죽을 맛이었는데 폰이 울렸다. 바로 안 받으면 너만 손해라는 식으로 울려대느라 마침 샴푸를 마치자 얼른 통화 버튼을 눌렀다. 서울 사는 박가였다. 취중 아니고 멀쩡한 채로는 연락이 뜸한 인간이 우짠 일인가 싶었다.

   - 알바 중?

   - 응.

   - 바쁘나?

   - 몹시 바쁘다.

   - 갑자기 궁금해서 전화했다.

   - 뭘?

   - 봄에 개업 한댔나?

   - 니한테 개업한다고 얘기했더나?

   - 얘기했으니 내가 묻지.

   - 4월쯤.

   - 개업일 정해지면 꼭 연락하소.

   - 끝?

   - 끝.

   전화 용무 한번 깔끔하다. 부산에서 한 잔 걸치자는 자신의 제안이 식언이 될까 애면글면해하는 박가가 눈에 선하다. 하긴 그 제안을 한 지가 이 년도 훨씬 넘었으니 유통기한을 한참 넘겨 진작에 용도폐기하고도 남는다. 그래도 빈말일지언정 개업 시기를 먼저 묻고 뭔지는 몰라도 친구가 개업하는 데 성의라도 비칠 양 설레발 떠는 건 기특한 노릇이다.

   바람이라면 기왕 성의 차원이라도 화환이나 화분 따위는 보내지 마시라 제발. 점방이나 거창하면야 구색 갖추기용으로 제격이겠으나 조붓한 공간에 괜히 호들갑 떠는 게 싫다. 또 다육이는 여가 선용 삼아 집에서 어찌어찌 키워 봤어도 일하는 데 정신 팔리고 장사가 지지부진하면 속이 문드러지느라 또 정신 팔릴 가게에서 유유자적하게 화분 기를 자신 전혀 없다. 그러니 장사치가 좋아라할 만한 실용적인 것으루다가 고려해 주면 참 고맙겠다.

   박가야, 행여 치렁치렁 늘어진 리본에다 네 이름 삼자 박힌 뭔가를 염두에 뒀다면 아서라. 그거 겉치레다. 나는 실사구시만을 원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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