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술과 잠의 상관 관계

by 김대일

돈이라는 요물을 잘 다룰 줄 알면 요 모양 요 꼴로는 안 살겠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사나울 수밖에 없는 내 팔자다. 말이야 번드르르한 인생 이모작한답시고 이 나이에 손목에서 쥐가 날 정도로 가위질, 바리캉질을 해대는 건, 당연한 소리지만 돈이 별로 없어서다. 다른 말로 궁여지책인 셈이다. 그럼 평상시 헐빈하기 짝이 없는 내 호주머니에 쥐구멍에 볕이라도 든 양 돈이 실린다면? 많건 적건 그 돈을 써재끼고 싶어 안달이 나는 못된 습성 때문에라도 나는 죽을 때까지 돈을 못 모은다.
돈을 벌지는 못해도 한 집의 가장이 비상금조로 다문 몇 푼이든 쟁여 두어야 한다며 부친 명의로 들어온 재난지원금 중 50만 원을 뚝 떼어 내 계좌로 송금하면서 부친이 토,일요일 알바 자리까지 소개해 주신 게 올 초였다. 남성커트점에서 이틀 일하면 최저 시급 정도 쳐주는 돈을 일당으로 받는데 2주 전부터 마누라한테 자진 반납하기 전까지는 인 마이 포켓했다. 덕분에 은행 계좌가 모처럼 묵직해졌던 게 사실이다.
직장인이 월급 받데끼 주기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이란 게 한동안 없다 보니 수중에 돈이 있다손 잘 쓰지 않는 편이었다. 아니, 쓰지 않은 게 아니라 못 쓴다. 오금이 저리고 손이 덜덜덜 떨려서리. 머리 깎는 연습 마치고 귀가하면서 중2짜리 막내딸한테 전화 걸어 저녁에 뭐가 먹고 싶냐고 물어보는 것까지는 참 다정다감한 아빠 모습인데 근처 마트에 들르면 맨 먼저 할인 코너부터 직행하기 일쑤였다. 사고 싶고 먹고 싶은 것들 앞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우물쭈물대다가 고작 1만 원 안짝 계산하고 나오면서 소비가 과했다고 자책한다. 요즘 물가에 1만 원 가지고 장바구니에 담을 만한 게 뭐가 있을지는 알아서 상상하시라. 그러던 내가 요 한 달 상간에 돈을 물 쓰듯 써버린다. 꼭 내일이 없는 사람마냥.
대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재활치료에 열중하는 모친을 볼 때마다 살아있어 준 것만으로 감사했다. 하지만 지리한 재활치료를 최소 6개월 이상 지속한다 해도 뭔가를 집거나 끌어야만 기껏 혼자서 집 안 안방에서 화장실 거리 정도밖에는 딛지 못하는 다리 근력으로 여생을 보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모친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당최 몰라 우울했다.
사람 목숨 붙어 있는 것만도 어디냐고 안도해하던 부친은 한정없이 들어가는 병원비와 간병비로 인해 벙어리 냉가슴을 앓던 중에 '화징실 가는 근력밖에'라는 의사의 말을 전달하는 내 말에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나도 살아야 하잖냐'라고 역정을 내셨고, 하다못해 열흘마다 결재해주는 간병비조차 내지 못하는 내 궁핍함과 자기도 어깨 수술이 예정돼 있어 큰 도움은 못 드리지만 간병비에 보태라고 300만 원을 부친 계좌에 입금시키면서 지금까지 지불한 병원비를 회사에 신청해 일부라도 보전받자며 준비할 서류 일체를 알려 온 서울 유명짜한 대기업 부장으로 있는 친동생의 음성 아닌 문자에다 대고 '정말 고맙다'라는 답글을 다는 내 배알이 드럽게 초라하고 한심해 또 우울했다.
엄마 와병 중에 나 아니면 병원 일 볼 사람이 없어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서 동분서주하다가 세 번째 이용사 실기 시험을 치렀다. 이번만은 꼭 자격증을 따겠노라 애를 쓰긴 했지만 채점을 내리던 한 심사관이 '삼수쯤 되면 붙을 때도 됐는데 어째 영' 하듯 회의적인 시선과 마주친 뒤 체한 것처럼 두고두고 마음에 걸려 시험을 친 지가 언젠데 여태까지 불쾌함이 가시지 않는다. 이달 말 결과가 나올 테지만 합격의 부푼 기대보다 불합격 이후 처신에 골몰하고 있다. 그까짓 면허증 하나에 매이는 내가 너무 싫다. 하지만 그게 내 여생의 불가결한 식권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 앞에 맥없이 순응하고 마는 내가 더 싫어서 나는 또 우울하다.
지난 주 선배 한 분이 영면했다. 그는 내 고등학교 선배면서 같은 대학교 같은 과 4년 선배다. 1987년 학번으로 여전히 혈기왕성해야 할 50대 중반 남성이었다. 지병으로 인해 투병 중이었다는 사실을 그가 영원히 잠들고서야 알았다. 이런 내 고백을 들으면서 눈치챘겠지만 나는 그에게 무심한 편이었다. 아무리 과 선배라고 해도 1980년대 학번과 1990년대 학번은 애창곡이 정태춘이냐 서태지냐 만큼이나 간극이 꽤 벌어져 있었다. 그러니까 4년이라는 터울은 가까이 다가가기엔 어딘지 어정쩡한 괴리감을 유발시키기에 충분한 사이였다고 하면 변명거리 축에나 들란가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의 부고를 들은 지난 주 일요일부터 정확하게 한 주가 지난 오늘 일요일까지, 아니 당분간 계속해서, 비보로 인한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건 그의 죽음으로 촉발된 인생은 고작 무상하다는 태연스러운 진리에 새삼 진절머리가 났기 때문이고 내 모든 것 또한 부질없다는 지독한 회의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요절이냐 천수냐는 의미가 없다. 언제고 분명히 죽을 운명인데 사람마다 타고난 유통기한에 길고 짧음이 무슨 대수랴. 그러니 무얼 더 바라고 집착하려 드는가.
어느덧 새벽잠마저 앗아간 우울감으로 나는 일순 중심을 잃어버린 채 표류했고 이 미칠 것 같은 감정을 회피하려고 나는 내 호주머니 속 쌈짓돈을 풀어서 술을 사먹었다. 처음에는 막걸리 한 통이면 한잠 푹 잘 수 있었다. 하지만 막걸리 한 통의 약발이 얼마 가지 못하자 500밀리짜리 캔맥주를 바늘 가는 데 실 가듯 거푸 마셔댔고 비로소 처음 한 통의 효과와 비슷해졌다. 그마저도 얼마 못 가자 늘 언감생심만 하던 '4캔에 만 원' 코너에 들러 덥썩덥썩 캔맥주를 꺼내기 시작했다. 두렵지 않았다. 많지는 않아도 아직 내겐 돈이 있었고 그 돈이면 알콜기에 잠을 청할 정도의 술은 살 수 있으니까. 마시고 마시고 또 마신다.
문제는 그렇게 돈을 들였음에도 나는 더 이상 취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꼬치에서 곶감 빼먹듯 여투어 둔 돈은 점점 줄어드는데 나는 취하지 않으니 앞으로는 그 감당을 어떻게 할지 걱정이 태산이다. 돈이 없으면 술을 못 마시고 술을 못 마시면 잠을 못 잔다. 잠을 잘 자면 술을 안 마셔도 되고 술을 안 마시면 돈 쓸 일이 없어 없는 살림인들 축날 일이 없다. 결국 잠을 잘 자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뾰족한 수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내 하루하루는 위태롭기 짝이 없겠다. 우울이 도졌다.

- 당장은 이렇게밖에 쓰지 못하지만 결국 내가 극복해야 할 문제다. 다만, 내가 바스러지기 쉬운 존재로 점점 변하는 것 같아 너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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