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자 일간지 신문에서 두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놀라운 기사를 봤다. 세계적인 인기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 창업주 이본 쉬나드 회장과 그 가족이 그들이 보유한 30억 달러(약 4조 2천억 원)에 달하는 회사 지분을 환경 보호를 위해 설립된 비영리재단 등에 통째로 넘긴다는 소식이었다.
쉬나드 회장이 이런 결정을 내린 까닭은 "50년 후 지구가 번성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면 우리가 가진 자원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 "나는 이 행성(지구)을 구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라는 그의 말에서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그보다 더 나를 가슴 뛰게 한 건 그가 <뉴욕타임즈>와 가진 인터뷰에서의 발언이었다.
"이번 조치가 소수의 부자와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로 귀결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에 영향을 미치기를 바란다."
내가 쉬나드 회장의 기부에 열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근자에 마르크스의『자본론』을 통독하기로 작심하고 사전적으로『자본론』을 해설한 책들을 먼저 읽는 중이다. 특히 고병권이라는 저자가 공들여 낸 12권짜리 <북클럽 『자본』> 시리즈는 저자의 친절한 해설이 돋보이는 역작으로 지금까지 6권을 읽었다.『자본론』 내용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마르크스의 사상을 명쾌하고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냄으로써 오랫동안『자본론』에 천착한 내공이 예사롭지 않음을 드러낸다. 마치 내 앞에서 마르크스가 북 콘서트를 여는 착각이 들 정도라면 말 다 한 거다.
하지만 읽는 내내 암울하다. 자본주의의 맹아인 영국에서 마르크스가 목도한 자본가와 노동자의 불화가 서로 결코 닿지 않는 양 갈래 철로처럼 현재까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고 미래는 더욱 비관적이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이는 죽을 때까지 가난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극단성에 제동을 걸 그 어떤 용기도 보이지 않는다. 고착화된 현실에 그저 순응하면서 사는 수동적인 인간들만이 아등바등하는 세상. 내가 기를 쓰고『자본론』을 읽어 내려는 건 아마도 거기에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삼켜도 삼켜도 얹히기만 할 뿐 쉽사리 소화해 내지 못하는 나같은 낙오자가 이 극단의 시대에서도 사람다워질 극적인 묘책이 혹시 숨겨져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었기 때문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설서 권수가 늘어가는 만큼 희망의 불빛을 발견하기는커녕 물신주의의 맹목성에 굴복하는 인간의 초라함만을 확인할 뿐이어서 조바심만 늘어가던 차였다. 그런 와중에 맞닥뜨린 쉬나드 회장의 발언이니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괴짜 자본가의 해프닝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의 발언 속에 어쩌면 마르크스만큼이나 이 시대를 구원할 단서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 모든 자본가들은 쉬나드 회장의 발언에 귀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