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by 김대일

『망원동 브라더스』라는 소설은 인상적이었다. 우선 문학적 수사와는 거리가 먼 직관적 서사 구조가 재미와 가독성에 엔진을 단다. 또 어차피 소설이라는 게 구라의 세계이긴 하지만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너스레를 떠는 재주(어려운 말로 개연성이라고 하는데)는 소설가의 미덕이다. 그제 한 일간지와 인터뷰를 한 김호연 작가는 이 소설 외에 지난 해 4월 출간 뒤 1년 넘게 베스트셀러 최상위권을 지키며 누적 70만여 권의 판매고를 자랑하는 『불편한 편의점』의 저자이다(『불편한 편의점』의 후속작도 나와 역시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랐다고 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문학성보다는 스토리텔링에 주안점을 두는 스토리텔러, 즉 이야기꾼을 자처했다. 이는 위에서 언급했던 바와 바로 통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한테만큼은 이 작가는 매력적이다.

『불편한 편의점』을 읽어봤는가. 나는 읽어봤다. 따끈따끈한 신간을 사서 읽었는데 소설책은 엔간해서는 제값 주고 신간을 안 사는 내가 무리를 한 까닭은 그만큼 김호연이라는 작가에 대한 기대감이 커서였다. 일단 술술 읽혔다. 두 번 세 번 곱씹어야 의미가 겨우 파악되는 문학적 수사 따위는 없어서 읽으면서 골머리 싸매가며 읽을 필요는 없겠다. 이는 이야기만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소설이라는 의미겠다. 기승전결이 명확해서 읽다 보면 내가 작가인 양 대충 다음 대목을 미루어 짐작할 수도 있다. 이는 우리가 현실에서 겪었음 직한 상황이 연출된다는 소리겠다. 겪어본 걸 떠올리기는 쉬우니까. 책을 읽은 내 감상평은 이렇다. 그냥 이야기를 주욱 늘어놓은 거다. 근데 재미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눈망울이 촉촉하게 젖는 감동도 배경음악처럼 잔잔하게 깔린다.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작가는 영락없는 이야기꾼이다.

나는 소설을 자주 읽는 편이다. 단편, 중편, 장편, 대하소설 안 가리고 읽는다. 곁가지로 빠지는 소리지만 번역된 소설은 잘 안 읽고 우리나라 작가들이 쓴 소설 위주로만 읽는다. 대중없으니 순수문학이니 대중소설이니 하는 기준을 들이대 가리지도 않는다. 살아서 꿈틀대는 재밌으면서도 유익한 서사를 소설처럼 쓰고 싶은데 그렇게 글을 쓰는 방법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어서 이런저런 소설을 섭렵하면서 여러 소설가의 작법을 체득하다 보면 얻어걸리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요행수를 바라는 마음이 소설책을 손에서 놓지 않게 하는 까닭이겠다. 한때는 <무진기행> 같은 문학계의 걸작을 꿈꿨지만 언감생심, 그런 건 불세출의 천재들의 영역이고 나같은 범인은 내 수준에 맞는 습작에 열중하는 게 신상에 이롭다고 진작에 마음 고쳐먹었다. 황새 따라가다가는 가랑이 찢어지기 십상이라고 주제 파악이 확실히 된 뱁새는 '도대체 글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라는 스스로에게 던진 오래된 질문에 대해서도 드디어 스스로 납득할 만한 해답을 찾은 것 같다. 해답이라고 찾기까지 제 딴에는 숱한 고민과 수련의 시간을 거쳤겠지만 드러내 보면 의외로 싱겁기 그지 없는 해답이렷다.

세상사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하물며 머리를 깎고 볼일 다 마친 손님이 점방 문을 나서는 불과 20여 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서도 기승전결의 구조가 꽉 짜여진 이야기는 있다. 점방에 머물다 간 손님의 동선이든 그 손님과 나눈 실없이 주고받은 농담 사이에서든 이야기는 숨어 있어서 이야기꾼을 자처한다면 그 숨은 걸 캐내 하나의 완결된 글로 표현해 낼 줄 알아야 한다. 단, 그 글은 술술 읽혀질 수 있게 재밌어야 한다는 전제를 충족해야 한다. 무미건조한 글자의 나열은 아닌지 늘 경계해야 한다. 재밌는 글을 쓰기 위한 절치부심. 매일 컴퓨터 모니터를 노려보는 까닭이겠다.

김호연 작가의 성공 비법을 요약한 글로 신문사와의 인터뷰는 마무리된다. "잘 쓴 작품은 언젠가는 인정받고 결국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만큼) 회수하게 됩니다. 영화든 드라마든 소설이든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 놓으시길 바랍니다."(<소설 '불편한 편의점' 작가 김호연>, 한겨레, 2022.10.04. 기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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