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回心​

by 김대일

막내딸 펜싱 시합 뛰는 거 직접 보겠다고 전북 익산까지 간 마누라가 그날 저녁 고속버스를 타고 늦게 부산에 떨어졌다. 지하철이 끊길 시간은 아니었지만 고속버스터미널로 차를 몰고 마중나갔다. 마누라는 반가운 눈치였다. 데리고 집에 오니 자정이 가까웠다.

마누라와 살가운 사이는 아니다. 고로 나는 썩 친절한 남편이 아니다. 극과 극은 통한다지만 기질이 완전 상극인 마누라와 20년 넘게 한 이불 덮고 살면서 엔간히 부딪쳤다. 당연히 넌더리 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고 그 지긋지긋함이 머리끝까지 치솟아 차라리 집을 박차고 나가고 싶은 충동에 부들부들 떨 때가 또한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입장을 바꿔 도대체가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신랑이라는 작자 때문에 속 터지는 마누라는 더했겠지만. 아이들이 제 앞가림을 할 나이가 되면 이혼 서류를 내밀고 미련없이 남해안 한적한 섬으로 훌쩍 떠나 버리고픈 상상이 통쾌할 정도였다면 말 다 한 셈이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나이 오십줄에 접어들고부터 진절머리 나던 화상이 왜 그리 불쌍해 보이는지 모르겠다. 제 딴에는 덧없이 보내 버린 청춘이 너무 아쉬운데 남은 인생까지 그럴 수야 없는 법이라며 돈 걱정일랑 일단 접고 철마다 여행이나 다니면서 원 없이 즐기겠다고 당차게 선언을 했으면서도 말뿐, 그녀의 영순위는 여전히 아이들이다. 시합을 간다, 전지훈련을 떠난다 하면 아예 애들 숙소 옆에다 방을 잡아 놓고선 몇 날 며칠 극성 같은 정성을 들이는 부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비슷하게 시늉이라도 내야 할 게 아니냐며 분발을 촉구하면서도 그렇게까지 할 수 없는 처지임을 모르는 바 아니라서 속상해하는 꼴이 또한 안쓰럽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당일치기일지언정 막내딸 사기를 북돋겠다며 회사에는 휴가계 내고 신새벽부터 부산을 떨던 마누라를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 상극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내 마음이 속절없이 허물어진다. 애처롭고 한편으로 미안하게.

늦은 밤 노포동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해운대 집까지는 30여 분이 걸렸다. 상대와 다섯 번 붙어 다 진 막내딸보다 더 아쉬워하는 마누라의 푸념은 집으로 가는 내내 이어졌다. 마누라 잔소리라면 학을 떼는 나였지만 운전에 집중한다는 핑계로 묵묵히 듣기만 했는데도 질리지가 않았다. '오죽하면 저럴까' 마누라 두둔하는 내가 좀 낯설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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