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성수기건 비수기건 춘하추동 계절조차 따지질 않고 여행용 캐리어를 동반한 이들을 지하철에서 거의 매일 본다. 부산 지하철 2호선이라 도드라져 보이는 풍경일지 모르겠다.
2호선은 동쪽으로 해운대(상행)에서 서쪽 양산(하행)에 이르는 부산 동서를 가로지르는, 서울 2호선을 연상시키는 긴 횡축노선이다. 동쪽은 해운대를 정점으로 광안리, 송정이라는 유명짜한 해수욕장이 포진된 관광 밸트인데 반해 서쪽으로는 2호선 사상역에서 부산-김해 경전철을 갈아타면 몇 정거장 안 가 곧 김해공항이다. 하여 2호선 상행선에서 목격되는 캐리어족은 십중팔구 해수욕장에 발 담그러 부산에 들른 행락객일 테고 그들이 일정을 마치고 되돌아가거나 부산 시민 중에 타지로 볼일을 본다든지 여행을 떠나려는 수단으로 국내선을 택했다면 지하철로는 2호선 하행선에 일단 몸을 실어야 한다.
캐리어를 볼 적마다 궁금했다. 허리께까지 키가 큰 여행용 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지. 도대체 얼마나 오래 머물 작정이기에 저토록 바리바리 한 보따리 싸서 낑낑대며 들고 다니는지. 여행이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탈출구 역할이라 한다면(자유를 찾아 탈옥을 감행하는 빠삐용을 떠올려 보자) 채비가 단출해야 여행길에서 느끼는 해방감, 행복감이 한층 충만해질 터인데 코뚜레가 꿰진 송아지가 짐바리 운반하듯 덩치 큰 이물을 달고 다니는 게 여행의 묘미쯤으로 여긴다면 넌센스면서 객기라고밖에는 나는 못 보겠다. 혹은 여행을 빙자한 허영기 대방출로 비춰져 가소롭기 짝이 없거나.
필립 한든이라는 사람이 쓴 『소박한 여행』(김철호 옮김, 강, 2004)에는 하이쿠의 명인이자 유랑 선승인 마쓰오 바쇼의 여행 가방에 담겨 있는 것들을 소개했다.
- 추운 밤에 대비한 창호지로 만든 옷, 우비, 문방사우 등. 차마 두고 오지 못한 벗들의 이별 선물들과 한시도 그를 떠나지 않은 불안과 고뇌.
마음 편히 여행 떠나 본 지가 언젠지도 모르는 내가 여행용 캐리어를 두고 트집을 잡는 게 분명하지만 부피와 상관없이 여행 가방에 무엇을 채워야 할지 곰곰이 궁리하며 즐기는 여행도 뜻깊지 않을까 싶어서 객쩍게 씨불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