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명

by 김대일

클래식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가 소개한 알프레트 시닛케(1934~1998)은 다른 작곡가의 곡을 인용하거나 패러디해서 현재와 과거의 작곡 스타일을 혼합한 곡을 만들기로 유명한 음악가였지만 음악가로서의 명성보다는 독특한 그의 묘비명으로 더 유명하댔다. '페르마타-온쉼표-포르티시시모'로 불리는 음악 기호가 그의 묘비명이다. 그 뜻은 "오래-쉰다-특히 아주 세게"로 가히 음악가답다.

묘비명墓碑銘이라고 하면 죽은 사람에 대한 경력이나 그 일생을 상징하는 말 따위를 묘비에 새긴 글을 일컫는다. 통상 남이 고인을 기려 남기지만 서양은 고인이 생전에 묘비명을 미리 남기기도 한다. 죽어서까지 생전의 명성을 이어가려는 수작질로 기상천외한 묘비명을 새겼을 리 만무하지만 어쨌든 세인의 입길에 계속 오르내리는 걸로 봐서는 미필적 고의의 혐의가 짙어 보인다. 그럼에도 단 몇 줄의 글로써 혹은 알프레트 시닛케처럼 음악 기호 따위 암호로 인생을 기발하게 정리할 줄 아는 촌철살인은 부럽다.

나는 내 묘비명으로 무엇을 새길까. 그것보다 우선 사는 동안 의미심장한 행적 하나쯤 이룩하는 게 급선무인 성싶다. 그런 나를 어여삐 여겨서라도 남들이 내가 쓴 묘비명을 알아봐 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투미하게 살아서야 남기긴 개뿔을 남겨.

- 만약 식인종이 나를 잡으면 나는 그들이 이렇게 말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슈바이처 박사를 먹었어. 그는 끝까지 맛있었어. 그리고 그의 끝도 나쁘지 않았어.(알베르트 슈바이처)

- 괜히 왔다 간다.(중광스님)

-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끝날 줄 알았다.(조지 버나드 쇼)

- 웃기고 자빠졌네.(코미디언 김미화는 자신의 묘비명을 미리 정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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