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싶었던 마음

by 김대일

대학 시절 활동했던 <솔트>라는 동문동아리 출신 중에 부산에 사는 동기들과 작당해 통영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 온 적이 있었다. 근 20년 간 몸담았던 회사를 박차고 나와 룸펜을 자처하며 달콤한 휴식기를 즐기던, 그러니까 인도네시아로 건너가기 전 용이와 나이를 먹을수록 더 세련되고 원숙미가 돋보이던 골드미스 희경, 그리고 나 이렇게 일행은 셋이었다. 통영을 행선지로 적극 민 건 나였다. 대신 통영을 통으로 돌아다니되 목적지를 미리 정하지 말고 떠오르는 대로 돌아다니자고 제안한 건 용이었다. 용이다운 발상이었다.

세병관 마루에 걸터앉아서 통영 구도심을 파노라마로 즐겼고, 싱싱한 해산물이 그득한 짬뽕으로 유명한 가게에 들러 맛나게 한끼 때웠다. 충렬사 가서 충무공께 문안 인사를 올린 뒤 바로 옆 백석 시비로 자리를 옮겨 <통영 2>라는 사랑시도 읊었다. 강구안 들러 거북선 내부를 둘러보고 박경리기념관, 청마문학관에도 들러 문호의 기를 흠뻑 느끼기도 했다. 오래된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통영을 일주하는 즐거움은 의외의 행복이었다. 특히 부산으로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기탄없이 늘어놓던 속엣말의 향연은 우리가 통영을 함께 갔으므로 가능했던 터라 통영이 내게 준 크나큰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이후로 그 동기들과 교류는 온도차가 좀 났다. 인도네시아에 눌러앉은 용이와는 SNS로나마 서로의 안부를 묻는 관계가 유지되지만 희경이와는 통영 일주 이후로 만나기는커녕 제대로 된 연락조차 주고받질 못했다. 여자 동기와 자주 연락을 취하는 것도 좀 이상하긴 하다. 동성과는 달리 너나들이하기에는 어색하고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니까. 그런 희경이한테서 그제 아침 문자가 날아들었다. 부고임을 직감했다. 부친상이었다. 함께 여행하면서 부친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얘기를 설핏 들었던 것 같다. 부모를 살뜰히 챙기던 외동딸의 상심은 컸을 것이다. 타지로 뿔뿔이 흩어진 다른 동기들이 상갓집을 찾기에는 요즘 시기가 참 공교롭다. 용이가 부산에 있었다면 당장 가보자고 부산을 떨었을 테지만 용이는 없고 부산에 홀로 남은 나는 통영을 거닐던 희경이의 얼굴만 자꾸 떠올랐다. 문상을 가긴 가야겠는데.

문자 부고장을 받은 날은 일요일인데다 모처럼 손님들로 복작거렸다. 커트하고 염색하고 헹구는 일을 반복하면서 머릿속으로는 조문갈 일을 궁리했다. 희경이를 보면 뭐라고 위로해줘야 할지, 유독 상갓집에서 의례적으로 해야 할 말에 서툰 내가 상주 앞에서 버벅대며 결례를 또 범하지는 않을지, 준비해 둔 위로의 말을 계속 곱씹으면서 혼자서 예행연습에 열중하고 자빠졌었다. 허나 나는 정작 문상을 가지 않았다. 갈 수가 없었다. 다 낡아빠진 면티에 반바지, 크록스를 직직 끌고 이른 새벽 점방으로 길을 나섰던 내 입성이었다. 퇴근해 집에서 갈아입고 나설 수 있지만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전날 마누라와 심하게 다툰 바람에 집 들어가기가 호랑이 굴에 제 발로 들어가기보다 싫었으니까. 이 차림 대로 상갓집에 가서 상주한테 양해를 구할까 싶다가 그마저도 관뒀다. 발상은 단작스럽고 언동은 칙살맞았으니까. 부의금으로 5만 원을 송금하고 희경이에게 문자를 남겼다.

'얼마 전부터 신상에 변화가 생겨 매인 몸이 된 뒤로는 일신이 자유롭지가 않다. 하여 이렇게 문자로 조문을 갈음할 수밖에 없겠다. 정말 미안하다. 다음에 재회할 기회가 생기면 자세하게 얘기 나누자.'

개좆같은 핑계였다. ​

불현듯 내 꼬라지가 지긋지긋해졌다. 문상 가는 것조차 이리저리 재보다가 여의치가 못하자 없던 일로 흐리마리하고 마는 행상머리란 드러내 보이기 싫은 추한 꼴을 자꾸 감추려 드는 일종의 자기기만 같아 꼴사나웠다. 덧정없는 새끼.

문상은 안 가고 집 근처 돼지국밥 가게에 들러 국밥에 소주 한 병을 깠다. 취하지 않자 골뱅이 파는 가게로 자리를 옮겨 골뱅이무침에 소주 한 병, 맥주 한 병을 시켜 섞어 마셨다. 오랜만에 Bill Evans 곡을 유튜브에서 찾아 들었다. 더럽게 울적해진 나와 그의 재즈가 궁합이 참 잘 맞다고 새삼 느껴졌다. 파하고 집으로 가는 중에 마누라한테서 연락이 왔지만 받지 않았다. 자칫 욕지거리가 튀어나올 걸 무응답으로 방지한 셈이다. 잘한 짓이라고 우쭐거렸다.

마누라는 이 시간까지 어디 있었냐고 따졌고 나는 문상을 갔다고 지껄였다. 그 행색으로 무슨 문상이냐고 의심스러워하자 상주한테 양해를 구했다고 대답했다. 실은 그러고 싶었던 내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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