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by 김대일

나온 지 좀 된 재즈 입문서 2권이 집구석에 처박혀 있는 걸 찾아서 다시 읽고 있다. 이종학이라는 시나리오 작가 겸 추리작가이면서 재즈칼럼리스트가 쓴 『재즈 속으로』(1994, 새로운사람들)와 『재즈 투데이』(1996, 새로운사람들)가 그 주인공들이다. 재즈 역사로부터 재즈 장르를 개척한 거장들과 출중한 연주가들을 소개하는 한편 들을 만한 음반을 소개하거나 책이 나올 당시인 1990년대에 활발하게 활동하던 중진 혹은 신예를 소개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좀 구질구질하게 재즈에 입문했었다. 1990년대 후반 직장생활하러 상경한 뒤 한 여자와 치명적으로 사랑하다 처참하게 차인 뒤로 실연에 향수병까지 겹쳐 심신이 걸레짝마냥 너덜너덜해졌을 무렵 강남 타워레코드에서 우연히 듣게 된 재즈가 큰 위로가 됐었다. 그 뒤로 한동안 이왕 듣는 재즈 지평이나 넓혀보자며 닥치는 대로 음반을 사고 재즈 서적도 뒤적거리면서 재즈야말로 영혼을 달래는 유일무이한 음악이라며 자평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니었다. 중학교 시절로 기억한다. 영화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 헵번이 입은 치마와 똑같은 치마를 나풀거리면서 음악실로 등장한 음악 교사는 클라이맥스 부분만 거칠게 편집한 테이프를 틀어주고서는 교과서에 나오는 클래식 음악가와 견주면서 무조건 외우라고 명령했었다. 그게 시험 범위라면서 말이다. 재즈에 푹 빠졌다는 내가 음악 시험 점수 따려고 아등바등거리던 중학교 시절 나와 무척 닮아서 같잖았다. 그러자 재즈 대가들의 이름이나 주워섬기고 남들도 한번쯤 들었을 법한 그들의 대표곡 한두 곡 섭렵한 걸로 재즈매니아입네 행세하는 꼴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게다가 벼락치기 감상이니 당연히 싫증도 금방 났고. 그렇게 재즈는 내게 잊혀진 음악이 되는가 싶었다.

나이 들었다고 볼장 다 본 건 아니다. 간혹 좋은 면도 없지 않다. 이를테면 그게 뭐가 됐든 마음에 꽂힌 게 생기면 금세 사그라들까 노심초사, 애지중지하면서 진득하게 완상하는 버릇이 생긴다. 물 들어올 때 노는 젓겠지만 은근하게 음미하는 것도 잊지 않는, 마음에 들어온 여운을 오래오래 간직하고픈 여유작작함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재즈가 다시 내 마음에 스며든 계기는 잘 모르겠지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데끼 소싯적 벼락치기 같은 실수를 또 저지를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집구석에 처박혀 있던 그 입문서들도 밑줄까지 그어 가며 외우는 데만 급급했던 예전의 내가 아니라 재즈계를 수놓았던 수많은 명인들과 그들의 연주를 하나하나 찬찬히 찾아 들으면서 참 묘미를 알아가는 구도자적 자세를 견지하는 나로 인도하는 길라잡이로써 대접받아야 한다.

음악 이론에 조예가 전혀 없는 나는 재즈를 그저 느낌으로 즐긴다. 마치 오래된 친구와 재회를 한 듯한 뿌듯함으로 내 귀를 홀리는 재즈와 오래오래 교감하고 싶다. 은은함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넋없이 짤이나 보던 내가 유튜브에서 재즈를 찾아 듣기 시작했다. 나쁘지 않다.

https://www.youtube.com/watch?v=UOLEEkYO4MA

https://youtu.be/K83xM6gO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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