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알라처럼 순하게 생긴 해겸이는 보기와는 다르게 냉철하다. 굴지의 중공업 회사에서 명석한 두뇌와 성실성으로 승승장구하다가 지금은 퇴사해 자기 회사를 꾸려 일로매진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오래된 사이지만 친구니까 지켜야 할 선만은 결코 넘지 않으려는 녀석의 완고한 태도는 단 한 번도 흐트러진 적이 없었다. 8년 전 그때만 빼고 말이다.
8년 전 내가 부산 민락동 포구에서 하꼬방 같은 포장마차를 꾸려 애면글면하던 어느 날 해겸이가 찾아왔다. 그때 상황을 글로 남겼었다.
그 녀석과 마주한 술자리가 숙연하긴 처음이었다. 말없이 두어 순배 오갈 즈음 가게문 열고 들어오는 한 무리 손님들을 마감했다며 돌려보냈다. 그러고는 녀석과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회한 가득한 녀석의 얼굴을 난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손 쓰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 큰 병원으로 옮긴들 무의미해서 현재 머무시는 병원에서 연명하는 게 차라리 당신을 위해서라도 나을 것 같다고 말하는 녀석의 무덤덤함 때문인지 빈 속에 벌컥벌컥 들이켠 소주 기운 탓인지 머리만 자꾸 지끈거렸다. 길어야 6개월, 여한 없이 보내드려야 할 텐데 생각만 많아진댔다. 나는 불쑥 목포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물었고 녀석은 그런 나를 빤히 쳐다봤다. 어머니와의 마지막을 막둥이네 목포 집에서 함께 하면 어떨까 싶어서였다.
소주 4병이 빌 즈음 녀석이 처음으로 내 앞에서 울었다. 친구 먹고 30년 넘도록 철옹성처럼 단단한 녀석의 냉철함이 예고된 죽음 앞에서 초라하게 허물어졌다. 당분간 토요일마다 부산에 올 거랬다. 야위어가는 어머니 얼굴 보고 병원문을 나서는 토요일 밤이 야속해 녀석은 아마 어김없이 소주잔을 걸칠 것이다. 그를 위해 토요일 저녁엔 테이블 하나는 비워 둘 작정이다. 오랜 친구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게 다니까.
얼마 안 돼 자당께선 운명하셨다.
남의 슬픔 앞에서 나는 바보가 된다. 어떻게 위로를 해줘야 할지 방법을 모르고 정작 필요할 때는 쭈뼛거리다가 모든 게 일단락이 되고 나면 글 나부랭이나 끼적이면서 뒷북을 치고 앉았다. 하여 나는 슬픔에 몹시 취약하다. 8년 전 소주잔을 나눈 게 해겸이한테 얼마나 위로가 됐을지도 회의적이다. 돌이켜보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위로랍시고 기껏 꺼낸 말이 어머니 모시고 목포 집으로 가라니.
지지난 주 부친을 여읜 희경이한테서 엊그제 문자가 왔다. 의례적인 감사글이었다.
대일아!
언제쯤이면 괜찮아질까..
아빠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에 상실감과 슬픔이 너무 크고 깊어서 우리가족들이 너무 많이 울었다..
너의 진심 담긴 메세지가 나에게 위로가 되었고 너무 고맙다.
너와 자주 연락은 못하지만
너에 대해 생각날 때마다 항상 너가 안전하고 건강하기를 바라고 있어.
가족들 모두 안녕하시길 기원해.
고마워.
문자는 낮에 왔는데 그날 내내 가슴이 답답해서 혼났다. 그걸 읽고 뭔가가 독하게 마음에 걸렸었나 보다. 그날 잠이 오질 않아 희경이가 보낸 문자에다 답장을 달아 보냈다. 의례적인 감사글에 답장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보내지 않으면 잠이 안 올 것 같아서 눈 질끈 감고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이럴 때는 답장이 큰 도움이 안 되는 줄 알지만, 네 슬픔에 내가 참 아프다.
슬픔에 겨워하는 너를 꼬옥 안아주면 네가 좀 나아질까? 아닐 거야.
가슴 찢어질 듯한 상실감마저도 지금 네가 감당해야 할 슬픔이야. 그 끝 간 데 없을 고통을 겪으면서도 아버지를 조금씩조금씩 이제 정말 보내 드려야 한다. 그게 너의 몫이다.
친구로서 그 슬픔을 나누지 못하는 게 마음 아프고 죄스럽다. 하지만 매정하게도 친구니까 이런 말을 남길까 해.
지금은 너 혼자 슬퍼하면서 견디는 수밖에 없다고. 응어리진 너의 슬픔을 모두 털어내고서야 아버지와의 마지막 작별을 고할 수 있다고.
나의 친구여, 나의 여린 친구여.
남의 슬픔 앞에서 나는 여전히 바보가 된다. 위로랍시고 꺼낸 게 혼자 실컷 슬퍼하다가 아버지와의 마지막 작별을 고하라니. 슬픔에 취약한 놈은 어떻게 위로를 건네야 할지 방법을 도통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