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by 김대일

일요일 아침, TV에서 <산>이라는 프로그램(KBS)이 나오는데 일군의 장년들이 네팔 안나푸르나 산군 일대 트레킹 코스를 돌며 행복에 겨워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그곳에 발 딛고 서 있는 것만으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식의 자아도취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내 관심사는 딴 데 있었다.

안나푸르나अन्नपुर्ण (Annapurna). 산 이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히말라야 산맥의 줄지어 우뚝 서 있는 산봉우리들은 제가끔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 봉우리들이 위치한 네팔이나 티벳의 고유어나 산스크리트어로 흔히 명명되어졌는데 그 의미가 사뭇 웅장하고 우아하며 기품이 있다.

에베레스트만 봐도 그렇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는 1852년 영국이 발견했고 발견 당시 '피크peak 15'로 표기됐다. 1865년 영국 왕립지리학회는 인도 측량국장의 공을 기려 '피크 15'를 측량국장의 이름인 '에베레스트'라고 부르기로 결정했단다. 몰랐으면 모를까 불리게 된 내력을 알고부터 그 이름은 왜소하고 시시하기 짝이 없다. 찜한 놈이 임자라는 식의 제국주의적 오만에 진절머리가 일단 난다. 이왕 붙일 이름이면 훨씬 비중이 높고 기념비적인 인물이었으면 어땠을까. 작명에 영 자신이 없었다면 차라리 그 산을 잘 아는 원주민이 호명한 바 대로 따라 부르는 게 훨씬 의미 있으면서 현명하지 않았을까.

에베레스트라고 불리는 산을 티벳과 네팔에서는 '초모랑마Chomolungma', '사가르마타Sagarmatha'로 부른다지. 세계의 어머니(초모랑마) 혹은 하늘의 여신(사가르마타)이란 의미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을 표현하기에 더없이 우아하고 웅숭깊지 않은가. 그깟 측량국장 이름에 비할 손가. 카피 문구에 갖다 붙여도 손색이 없다. 이를테면,


최고급 아웃도어 브랜드,

초모랑마!(혹은 사가르마타!)


따지고 보면 거기서 내내 살았던 사람들이야말로 거기에 늘 그대로 있는 산을 누구보다 먼저 발견했다. 그러니 세계 최초 발견이라고 거들먹거리고 정복자인 양 원래 부르던 걸 싹 무시하고 입맛대로 명명하는 작태야말로 오만의 극치다. 평소에 에베레스트라는 단어를 들먹일 일이 별로 없지만 설령 있다 해도 '에베레스트' 대신 '초모랑마'나 '사가르마타'를 주워섬기거나 그 이름들이 후딱 떠오르지 않으면 '제일 높은 산'쯤으로 대충 얼버무리고 마는 까닭이겠다.

네팔 ​​북중부에 위치한 8,000m급 봉우리 1개, 7,000m급 봉우리 13개, 6,000m급 봉우리 16개로 이루어진 대산군을 안나푸르나 산군​이라고 칭한다. 보통 안나푸르나라고 불리는 건 그 중 최고봉인 안나푸르나 I봉을 지칭한다. 안나푸르나는 산스크리트어로 '가득한 음식'을 의미한다. 힌두교 풍요의 여신 '락슈미'를 상징하는 산이기도 하다. 등정을 목적으로 하는 등산가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트레킹 코스가 잘 개발되어 있어서 전 세계에서 온 트레커들의 집결지이기도 하단다.(나무위키 참조)

안나는 '음식', 푸르나는 '무한하다'는 뜻이니 '수확의 여신' 혹은 '풍요의 여신'보다는 '가득한 음식'이 가장 들어맞는 표현일 듯싶다. 게다가 산이 무리를 이뤘으니 마치 식탁 위에 산해진미가 널려 있는 형상과 다를 바가 없으니 과연 뜻이 통하는 이름임에 분명하다. 얼마나 압도적인 장관이면 그런 이름이 붙여졌을까. 트레킹하는 일군의 장년들 표정이 하나같이 황홀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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