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시속 사십 킬로로 달리는 차

by 김대일

소설가 이문구 단편 중 「장천리 소태나무」에 나오는 한 사설은 이렇다.

이보슈. 인간의 평균 수명이 얼마요. 한 칠십 정도가 아니우. 그러면 평균 칠십 년 잡구, 인간이 그 칠십 년을 향해서 가는 속도가 얼마나 되는지 알우? 나도 얼마 전에야 우연히 어떤 책에서 보구 깜짝 놀랬시다마는, 무슨 얘기냐 허면, 인간은 앉은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두 그 칠십 년을 채우기 위해서, 즉 죽음을 향해서 시속 사십 킬로루 달리구 있다 이거요. 자 그러니 가다가 안 서게 됐수? 그것도 차루다가 달리는데 가다가 더러 안 설 수가 있겄느냐 이거요. 그러찮수? 어떠슈, 들어보니 무거워요?(『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문학동네, 2000, 81쪽)

사설이 등장하는 장면이 근데 좀 남사스럽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충청도 한적한 시골에 언제부턴가 '산길 들길 논길 밭길 개릴 것 없이, 신작로구 흔작로구 닥치는 대루 차가 들어가는 길이면 들어가서, 낮이구 밤이구 차만 서 있다 허면 꼭 그 지랄덜'이었다. 소설 주인공인 이송학씨가 가다가 말구 길에서 거시기해쌓는 차를 말리는 단속반장을 억지춘향으로 맡고서 계도를 하던 차에 한 중다리 차주가 적반하장 격으로 변명을 늘어놓는 게 바로 위 대목이다.

사설에 등장하는 '어떤 책'이 어떤 책인지 그 출처가 궁금하고 무슨 근거로 시속 사십 킬로로 단정했는지는 더 궁금해서 인터넷을 구석구석 뒤져봤지만 결국 단서조차 찾지를 못했다. 그렇다고 소설가가 지어낸 가공架空의 책도 아닌 성싶다. 시속 이백삼십오 킬로로 날아가는 양궁 화살을 떠올리며 화살같이 지나가는 세월이라고 빗대곤 한다. 하지만 순식간이라고 퉁치기에는 숱한 사연으로 점철된 우리네 인생은 복잡다단하기 그지 없다. 어쩌면 '죽음을 향해서 시속 사십 킬로로 달리는 차'라는 표현이 훨씬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하여 꾸며낸 내용이라고 하기에는 설득력이 가공可恐할 수준이다.

속도감을 느끼기에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으나 시속 사십 킬로도 전혀 안 느리다. 운전을 할 줄 아는 사람이면 시속 사십 킬로가 전혀 심상하지 않은 속도란 걸 안다. 하여 소설 속 인물이 말한 내용이 맞는다면 대단히 섬뜩하다. 인생이 소멸하는 속도가 우리가 체감하는 것보다 더 빠를 수 있으니까. 그러니 우리는 멈출 줄도 알아야 한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말이다. 설령 카섹스를 즐기려는 따위 응큼한 발상에서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세울 수 있을 때 잠시 인생이라는 차를 정차하고 즐겨야 한다. 그게 인생을 유익하게 영위하는 방법이지 싶다.

추신- 소설 속 '어떤 책'을 아는 분은 알려 달라. 암만 찾아봐도 못 찾아서 돌아버릴 지경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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