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온 손님 머리를 깎고 있었다. 점잖게 생겨 입성까지 멀쩡한 중다리가 곧 들어왔다. 화장실을 찾길래 알려줬다.
- 문 열고 나가서 오른쪽요.
- 상냥하게 얘기할 순 없어요?
- ?
- 올 적마다 툭툭거리데. 좀 친절할 순 없냐 말이오.
깎새는 중다리를 그날 처음 봤다.
중다리는 자기 차례가 올 때까지 스마트폰을 붙잡고 누군가와 열심히 통화했다. 안부 외엔 긴한 내용은 아니었다. 이발의자에 앉히자 커트와 염색을 해달라고 했다. 구겨진 첫인상 여파겠지만 중다리와 깎새 간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하지만 깎새는 눈치가 빠르다. 이럴 때일수록 말을 먼저 거는 사람이 진다는 걸. 커트를 하고 염색약을 바르는 동안 중다리 동태를 예의주시하던 깎새는 중뿔난 걸 발견해 내진 못했다. 겉으로 보기에 평범하고 멀쩡한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게 깎새의 착각이었다.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려는 걸 금연이니 밖으로 나가라고 내보냈다. 다른 커트 손님 머리를 다 깎을 때까지 나간 중다리는 들어올 생각을 안 했다. 다른 커트 손님이 머리를 깎고 샴푸를 한 뒤 요금 계산까지 다 치르고는 점방 문을 나서려는 걸 배웅하다가 염색약 잘 스며들라고 옆머리에 붙여 놓은 비닐 조각을 휘날리며 점방 맞은편 인도를 바쁘게 걸어가는 중다리를 발견했다. 깎새 점방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중다리를 보면서 혼란스러웠다.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인 건 분명하고 깎새 점방이 목적지이니(멍청하게 들리겠지만 당연히 목적지는 깎새 점방이다. 염색한 머리를 행궈야 할 시간이 한참 지났었다) 도로를 가로질러 왔던 길을 되돌아와야 하건만 정반대로 가고 있으니 말이다. 초행길이 헷갈려 일순 갈피를 못 잡아서 그렇겠거니 여기고 좀 더 지켜보려다가 아니 되겠다 싶어 목청껏 되돌아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는 깎새 점방에서 맞은편으로 한 50m 떨어진 이발소로 쏙 들어가 버리는 게 아닌가. 깜짝 놀란 깎새는 후다닥 이발소로 뛰어들었다. 아, 살면서 이런 가관은 또 처음이었다. 중다리는 그 점방 아주 오래된 단골 행세라도 하듯 대기석에 앉아 다리를 꼰 채로 거들먹거리고 있었고 그 황당한 광경에 이발사와 손님으로 와 있던 경찰 정복을 입은 사람이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얼른 중다리를 끄집고 나왔다.
술냄새가 나질 않으니 취중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 했다. 살짝 늘어지는 감이 없지 않았으나 음성이 또박또박해서 예사로 봤다. 무엇보다 마실 나가는 로맨스그레이의 준수한 맵시가 도드라져 보이는 옷차림에 깎새는 착시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그 중다리가 방향감각을 완전히 잃었고 자기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도 까맣게 잊어 버린 것처럼 보였다. 요금이 싸서 카드 단말기를 비치하지 않았다고 사전에 공지했을 때 중다리는 요금을 계좌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요금을 지불하려고 은행 앱을 여는 것까지는 좋았다. 계좌번호를 찍어야 하는데 도통 찍지를 못 했다. 답답한 나머지 깎새가 스마트폰을 뺏다시피 해 송금시켰다. 어렵사리 요금을 치른 중다리가 나가면서 깎새에게 한 마디했다.
-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 말아요. 나 멀쩡하니까.
설득력이 부족한 항변은 무색했다.
중다리가 떠난 뒤 단골 손님이 들어왔다. 일흔이 다 된 백발이 성성한 손님은 무척 점잖고 학자연한 분이다. 단골 손님을 앉히고 좀 전에 벌어졌던 해괴한 상황을 늘어놓자 일전에 같이 머리를 깎으려고 데려왔던 자기 동생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기억이 나고 말고. 보통은 단골 손님 혼자서 점방을 찾지만 지난 번에는 한 사람을 달고 왔었다. 살갑게 대하는 게 일가붙이인 게 분명해 보였다. 닮기도 많이 닮았었고. 뭔가 짚이는 구석이 있었는지 단골 손님은 그때 그 동생이 초기이긴 하지만 알츠하이머치매를 앓고 있다고 밝혔다. 사업에 실패하자 이혼을 한 뒤 필리핀으로 건너가 재기를 노리던 중 뇌출혈로 쓰러지고 만다. 긴급하게 수술을 했지만 이후로 이상 증세를 보이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지극 정성으로 돌봐주던 필리핀 와이프가 세상을 뜨자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되어 국내로 데려왔다. 쇠약해진 심신을 다스리자니 도시보다는 시골에서 요양하는 게 나을 성싶어 마침 부모님 유산을 모두 물려받고 고향에 살고 있는 형님(삼형제라고 했다)한테 동생을 맡겼지만 얼마 못 가 쫓겨났다. 쫓겨난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을 아꼈지만 치매 증상과 관련이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형님은 동생을 쫓아내면서 두번 다시는 자기 눈에 띄지 않게 하라면서 부모 제사에도 동생 데려올 생각이면 아무도 오지 말라고 폭탄 선언을 해버렸다. 단골 손님은 자기가 사는 근처에다 거처를 마련해 동생을 눌러앉히고는 이후로는 형네에 가지 않았다고 했다.
드러내봐야 좋을 것 하나 없는 가족사를 주워섬기면서까지 단골 손님이 역설하려던 건 치매에 걸렸다고 해서 증상이 곧바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러다 혹시 병을 앓는 이가 느닷없이 당치도 않은 짓을 저지르면 당황스럽기야 하겠지만 너그럽게 이해하려는 마음이 절실하다고 부탁했다. 가족 중에 그런 사람이 있으니 깨우치게 됐다면서.
단골 손님은 중다리의 해괴함을 치매 증상에 견줘 지레짐작해 이해하려 들었지만 깎새는 뿔이 단단히 나서 생각을 고쳐 먹을 수가 없었다. 그게 명정酩酊이 심해서든 요새 만연한다는 신종 마약 때문이든 중다리는 분명히 무엇에 취해 있었다는 걸 깎새는 확신했다. 차라리 공중부양한 사람인 양 날린다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경거망동은 치매 환자의 증상과는 결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고 깎새는 판단했다. 만약 깎새의 짐작이 맞는다면 중다리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반듯하게 젠체하지만 뒷구멍으로 호박씨나 까는, 자기의 무분별한 행상머리 때문에 타인이 고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조차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분열적 인간. 단골 손님의 간곡하기까지 한 양해에도 불구하고 중다리를 경멸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