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괴한 중다리 (2)

by 김대일

한 중다리가 머리 깎고 염색까지 한 상태로 딴 이발소에 들어간 엽기 행각을 어제 글로 옮겼었다. 관련해서 쓸 게 좀 남아 몇 자 더 보태겠다.

정신머리없는 중다리를 이발소에서 끄집고 나올 때 깎새는 자존심이 몹시 상했었다. 손님 간수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깎새 노릇이냐고 뒤통수에다 대고 비아냥거릴 것만 같아서였다. 동네 장사라지만, 아니 동네 장사라서 더 신경이 곤두서는 동종업계 라이벌한테 본의 아니게 흠이 잡혀 중다리가 원망스럽기 그지없었다. 경영 방침이라면 거창하지만, 완벽한 놈은 아닐지언정 남한테, 그것도 호적수한테 무결점 완벽주의자로 비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깎새다. 신출내기임에도 개업한 지 얼마 안 돼 점방을 반석 위에 번듯하게 올려놨다는 시새움 섞인 부러움을 사고 싶었던 희망은 중다리로 인해 일장춘몽으로 전락했다. 경쟁심이 자괴감으로 돌변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날 벌어졌던 해프닝을 곰곰이 복기해 보자니 급한 마음에 실수를 저지른 건 아닌지 두려웠다. 역지사지라고 깎새가 만약 맞은편 이발소 주인이라면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겠다 싶었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녀석인지 모르겠지만 엎어지면 코 닿는 데에다가 커트점이란 걸 차려 놓고선 가뜩이나 없는 손님 곳감 빼먹듯 슬금슬금 훔쳐가는 바람에 속에서 천불이 날 지경인데 웬 미치갱이가 그 염병할 깎새 점방에서 덕지덕지 염색약을 바르고 와서는 손님 행세를 하려 드니 제 아무리 아량 넓은 호인이라도 속이 뒤집어지지 않을쏜가. 그 와중에 웬수같은 깎새가 후다닥 튀어와서는 범인 검거하듯 미치갱이를 데불고 나가면서도 책임을 통감할 어떠한 언사도 내놓지 않으니 이런 결례는 무슨 막돼먹은 짓인가 말이다.

원인은 중다리가 제공했지만 책임 소재를 떠나 결례를 범한 게 틀림없어지자 깎새는 다급해졌다. 다시는 안 볼 사이라며 안면몰수하기에는 결정적으로 깎새 마음이 여리다. 불찰을 깔끔하게 인정해 놓고 나서 상종을 하든 안 하든 마음이 편하겠다고 결론 내린 깎새는 다음날 박카스 한 병을 사들고 출근길에 이발소를 들렀다.

이층 구조인 이발소 건물은 자가인 성싶었다. 남자 주인은 안 보이고 여자 면도사만 이발의자에 누운 손님 면상에다 면도칼을 들이대고 면도하느라 열심이었다. 오랫동안 그 이발소를 출입하다 얼마 전부터 깎새 점방으로 전향한 손님 말을 빌면 면도사인 여자는 이발사의 아내란다. 고로 늙은 부부가 운영하는 오래된 이발소이다. 인기척을 눈치챈 면도사가 깎새를 발견했다. 손님이 아니란 걸 알아챘는지 경계 섞인 표정이 다그치듯 째려보는 시선으로 변했다. 깎새는 가져온 박카스를 탁자 위에 내려 놓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는 중에 뒷문에서 이발사가 나타나더니 웬수같은 깎새를 알아봤다. 섬뜩할 만큼 무표정이어서 깎새는 순간 긴장했다.

- 이상한 손님 때문에 결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만 그때는 경황이 없어 제대로 사과 말씀도 못 올렸습니다. 늦었지만 죄송했다는 말씀 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전후사정을 파악한 면도사의 얼굴이 살짝 펴지는 게 느껴져 깎새는 안도했지만 여전히 무표정인 이발사와는 눈도 못 마주쳤다. 볼일 다 본 깎새는 꽁지가 빠져라 제 점방으로 날랐다.

좌우지간 할 도리는 다 했다고 여긴 깎새는 체증이 가신 듯이 후련했다. 모든 사달은 그 해괴한 중다리에서 비롯되었기에 중다리만 떠올리면 분이 안 풀리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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