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맛을 잊질 못하는 먹거리 둘 외에 서울살이가 남긴 추억거리라곤 별로 없다. 1997년 7월 1일부터 2002년 10월께 부산 낙향하는 것으로 종지부를 찍은 서울살이가 유쾌하지 않은 시절이었다면 양평해장국, 을지로골뱅이는 그 어둡고 탁한 시절을 구원해 준 한 줄기 빛으로 각인되었다.
서울 신대방동 롯데백화점 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점방에서 팔던 해장국을 나는 최고로 치고 그 맛을 절대 못 잊는다. 그 점방이 양평해장국이라는 브랜드로 운영되는 체인점이었는지는 오래돼서 가물가물하다. 아무려면 어떠랴. 살면서 먹어 본 그 어떤 해장국보다 내 입맛에 딱 들어맞았으면 그만이지. 당시 다니던 회사가 그 부근이라 점방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렸다. 숙취로 고생하는 속을 달래러, 점심 끼니 때우러, 퇴근하고 한잔 하러 가고 또 갔다. 선지와 내장, 콩나물이 아낌없이 들어가 어우러진 국물을 한 숟가락 뜨면 맛도 맛이거니와 남몰래 쌓인 서울살이 울분이 싹 가시는 쾌감이 산뜻했다. 뚝배기 바닥을 벅벅 긁으면서 퍼마시는 게 지지리도 정이 안 가는 넨장맞을 도시에서 어떡하든지 견뎌내겠다는 의지를 새삼 다지는 나만의 의식이라고나 할까. 부산 내려와서 양평해장국이란 간판에 속아 시켰다가 당장이라도 식탁을 엎어버릴 듯이 치미는 분노를 참느라 혼난 적이 여러번이라서 더는 부산에서 양평해장국은 안 먹는다. 그때 그 맛을 바랐던 내가 멍청한 거지.
을지로골뱅이는 명동 거기에 아직 있을까. 해운대 장산역 부근에 을지로골뱅이 상호 걸고 성행 중인 점방이 있다. 짝퉁치고는 유서가 깊다. 내가 해운대 신시가지에 이사 가던 2003년부터 그 일대에 이미 자리를 잡고 골뱅이를 팔고 있었으니 그 시점으로만 쳐도 일단 20년을 넘긴 업력이겠다. 서울 명동 근처에 본사가 있던 증권사로 출퇴근하던 동우를 꾀어 술추렴하던 곳은 외환은행 본점 주변 노상이었고 술안주로 먹던 건 주야장천 골뱅이무침이었다. 을지로골뱅이 레시피는 파절이와 황태포(혹은 가자미포)를 듬뿍 넣어 버무리는 게 다다. 거기에 달걀말이가 추가로 따라나올 뿐이었다. 장산역 을지로골뱅이는 명동에서 먹던 본새를 빼다박긴 했다. 허나 원조만이 뿜어내는 아우라에는 미처 범접할 수가 없는지 내 입맛에는 너무 시고 대파는 애리며 골뱅이는 흐물흐물하고 양도 적어 좋은 점수를 못 주겠다. 옛날 기분 내러 가끔 들르지만 돌아서 나올 적마다 허무해지기 일쑤다.
옛날 기분이라고 말은 쉽게 하지만 나로서는 무척 불감당한 감정의 쓰나미다. 저녁 무렵 동우랑 명동 노상에 퍼질러 앉아 즐기던 골뱅이, 달걀말이, 히야시 만땅인 맥주가 떠오르면 먹거리가 그득하게 차려진 상을 두고 타향살이로 버거웠던 마음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마음껏 웃고 떠들던 그때 동우와 나의 청춘도 떠올라 그리우면서도 서글프다. 이대로 무미건조하게 늙어가는 내가 초라하기만 해서.
음력 7월 초하루가 내 생일이다. 요 몇 년 전부터 생일이 가까워지면 유독 울적해지는 기분을 다잡을 수가 없다. 만사가 귀찮아지고 덧없기 짝이 없다. 생일치레야말로 속절없는 인생을 새삼 확인시키는 고통스런 연례행사다. 기념한다고 기뻐하고 행복해야 할 의미가 뭐냔 말인가. 엊그제 퇴근하는 길에 집 대신 장산역 을지로골뱅이 점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을지로골뱅이를 먹으면 혹시 그때 그 기분이 되살아날까 기대했지만 구석진 자리에 혼자 옹송그리고 자작하는 소주만 엄청 썼다. 밤 10시를 향하던 무렵 동우한테 문자를 보냈다. 을지로골뱅이에 얽힌 추억팔이 문자였다. 동우답게 답신은 짤막했다.
<기억 참 좋네. 읽다보니 나도 예전 생각이 나네. 오늘 한잔했나?>
술김에 장황해졌다.
<실은 장산 골뱅이집에서 혼자 한잔 하는 중이다. 그냥 울적하기도 하고 옛날 생각도 나서 집에 못 들어가겠더라구. 내일 일도 해야 하는데, 뭐 어찌 되긋지.
잘 지내나? 나도 나이 먹은 티를 팍팍 낸다. 음력 7월 초하루가 생일인데 이상하게 생일만 다가오면 울적해진다. 집에도 들어가기 싫고 마누라가 챙겨 주는 것도 귀찮아. 대신 자꾸 옛날 생각이 밀물처럼 몰려드네. 감당 못 할 만치. 그래서 몹시 마음이 데다.>
동우는 이후로 더 답을 달진 않았다. 혼술하며 청승을 떨다가 그로부터 40여 분쯤 자리를 털고 일어서면서 또 문자를 남겼다.
<다 먹고 간다. 잘 자라.>
무상한 세월은 수다쟁이를 원치 않는다. 그저 고분고분하게 늙어가는 게 삶의 모범적인 본보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