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지역화폐 동백전으로 대중교통 요금을 결제하면 환급해주는 제도가 생겼다고 해서 사용 중이다. 구체적으로 월 4만5천 원 이상 9만 원까지 사용하면 초과 사용액(최대 4만5천 원)을 동백전으로 환급하는 제도다. 1년이 기한이지만 매달 10만 원에 육박하는 교통비를 지출하는 나로서는 꽤 유용한 혜택이다.
지난달 말 부산은행에서 동백전 체크카드를 발급받아 이번달 1일부터 쓰고 있다. 결제는 후불이라고 했다. 이전에는 마누라 신용카드를 썼고 한 달 동안 쓴 만큼 돌아오는 결제일에 맞춰 마누라한테 송금을 해주는 식으로 결제했다. 동백전도 그렇게 한 달마다 결제일에 맞춰 결제를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결제는 매달 3번에 걸쳐 이뤄진다고 부산은행 동백전과 연계된 BC카드사에서 알려줬다. 예를 들어 결제일이 매달 5일이라고 한다면, 이번달 10일, 20일, 말일마다 해당 기간 내 일으킨 매출을 카드사가 정산해 은행에 통보하고 은행은 기간 내 쓴 교통 요금만큼 고객의 연결계좌에서 출금해간다. 만약 잔고가 부족하면 다음달 결제일(5일)에 미출금액 전부를 출금하는데 그때도 잔고 부족으로 출금이 안 되면 최종적으로 연체로 잡힌다. 과문해서 BC카드 상담원한테 신용카드로 교통요금을 결제할 때는 매달 한 번만 결제를 하면 됐는데 경우가 다르냐고 물었더니 체크카드는 원래부터 한 달에 세 번씩 결제가 들어간다는 대답이었다.
원래 그렇다고 하니 따를 수밖에 없지만 신용카드는 신용을 담보로 하니 한 달에 한 번만 결제하고 후불제 체크카드는 믿고 맡기자니 적잖이 미심쩍어 한 달에 세 번씩 체크를 해야 해서 체크카드라 이름이 붙여졌나 싶어 뒷맛이 씁쓸했다. 아니다. 은행을 필두로 한 금융권으로부터 도저히 신용할 수 없는 불량분자로 취급 당한 과거의 쓰라린 경험을 결코 잊지 못하는 나로서는 신용카드가 됐건 체크카드가 됐건 고객이라는 호구를 애시당초 믿지 않는 비열한 고리대금업자가 채무불이행을 염려해 미리 강구해 놓은 물샐틈없는 안전장치를 새삼 확인하는 계기로 유익했다.
빚에 치어 세상 쓴맛을 원없이 맛본 자가 죽어서 무덤까지 가져갈 신조가 있다.
'은행을 믿어서는 안 된다.'
빌려줄 때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온갖 아양을 다 떨어댄다. 그러다가 차입자 신용 상태에 황색불(빨간불도 아니고)이라도 들어오거나 급변하는 금융환경에 발빠르게 대처한다는 핑계를 아전인수격으로 내리고는(지들 사정을 왜 남한테 전가하는지 모르겠지만) 부리나케 한도를 줄인다는 둥 원금 전액 상환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호들갑을 떤다. 사정을 봐 주는 척 '정 그러시다면'서 대출금리를 턱없이 올리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고객이 급여이체와 공과금 납부 따위를 몰아주면서 충성을 다한다 한들 신용이 낮거나 거래금액 자체가 적으면 이체 수수료까지 다 챙겨 먹지만 그 고객이 정작 돈이 급해 은행문을 두드리면 신용이 낮다, 담보가 없다는 꼬투리를 잡아 문전박대해 없는 놈을 두 번 죽인다. 유명 스타들한테 광고료를 물 쓰듯 뿌려 만든 광고에는 온갖 감언이설로 공익적 역할을 강조하는 선전 문구가 난무하지만 마른 수건 쥐어짜듯 없는 자들의 고혈을 뽑아 그들 배만 채우는 추악한 아귀 집단의 위선일 뿐이다.
엄밀히 말해 보자. 은행이 가지고 있는 자산이 은행 것인가. 은행이 할 줄 아는 짓이라고는 남의 돈으로 돈장사를 해 마진을 챙기는 거간꾼이 본질이지 생산적인 건 하나도 없다. 저금리로 돈을 빌려와서는 고금리로 돈놀이를 하는, 혹은 펑크가 난 은행 재정을 국민 세금으로 구제받는 걸 부끄럽게 여기기는커녕 제 돈도 아니면서 고리대금을 벌이는 것도 파렴치한데 그렇게 번 돈으로 주주들 고배당하고 지들끼리 상여금 잔치를 벌인다. 염치도 없이 제 주머니 속만 채우는 족속들이 엘리트랍시고 하루가 멀다하고 신문 경제면을 장식한다. 자본주의라는 멍청이가 낳은 질이 아주 나쁜 괴물이 아니면 은행이 도대체 무엇인가.
이케이도 준은 일본 작가로 게이오기주쿠대학 문학부와 법학부를 졸업한 후 미쓰비시은행에서 은행원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은행을 퇴사하고 전업작가로 전향한 뒤 은행원 경험을 살려 주로 경제 관련 선 굵은 소설을 주로 내놨다. 은행 비리와 관련된 흑막이나 대기업의 만행, 은행의 갑질에 어려움을 겪지만 결국 극복하는 중소기업 얘기가 주를 이룬다.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는 이케이도 준이 일본 대형 은행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은행 조직 속 정치 싸움, 금융 업무 사무 비리 따위를 실감나게 그려냈다. 엔터테인먼트 소설을 표방하지만 은행의 속성을 적절한 비유로 표현한 대목은 가히 통찰적이다. '은행을 절대 믿어서는 안 된다.'
날씨가 좋다면 우산을 내밀고 비가 쏟아지면 우산을 빼앗는다. 이것이 은행의 본모습이다. 대출의 핵심은 회수에 있다 . 이것도 역시 은행의 본모습이다. 돈은 부유한 자에게 빌려주고 가난한 자에게는 빌려주지 않는 게 철칙이다. 세상이란 원래 그런 법이다. 이것이 은행 대출의 근간이자 은행의 사고방식이다. (이케이도 준, 『한자와 나오키 1』, 이선희 옮김, 인플루엔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