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새 점방 맞은편 감자탕 아줌마는 8/1부터 장장 보름에 걸쳐 여름 휴가를 간다는 안내문을 내붙였다. 그 배포가 시새우면서 부러웠던 깎새는 그런 아줌마를 글감 삼아 끼적거린 적이 있다.
안내문대로라면 광복절 다음날부터 문을 열고 손님을 받아야 했다. 헌데 감자탕 점방의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고 귀티가 잘잘 흐르는 주인 아줌마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긴 휴가를 끝내고 다시 연 줄 알고 찾았다가 공고하게 닫힌 점방문에 써붙여진 낯선 새 안내문을 보고 의아한 듯 갸우뚱거리다 뒤돌아서는 행인들을 목격하자 도대체 뭐가 쓰여져 있는지 궁금해서 깎새는 미칠 지경이었다.
'개인 사정으로 당분간 쉽니다'
하늘로 글자가 날아갈 듯 급하게 휘갈긴 게 역력한 손글씨는 이럴 수밖에 없는 숨은 사연을 품은 것만 같았다. 혹시 휴가를 보내다 공교롭게 본인 혹은 식구 중 누군가가 득병하는 바람에 부득이하게 휴업을 이어가기로 결정한 것일까? 그게 아니면 유유자적하게 휴가를 보내는 와중에 문득 인생 고달프게 살면 뭐하나, 이왕 쉴 거면 여한없이 푹 재충전하고 나서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도 나쁠 거 없다는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 걸까? 아니야. 정황상 후자는 가능성이 희박해. 일단 써붙여 놓은 안내문 글씨에서부터 드러나잖아. 개발괴발 그린 문구만 남기고 야반도주하듯 사라진 사람과 여가를 느긋하게 즐기는 사람을 겹쳐 놓으면 동일인물이라고 보기가 참 어렵다.
아줌마의 속사정을 알 길이 전혀 없는 깎새는 제멋대로 이런 저런 상상을 하며 소설을 쓰고 자빠졌다. 다만, 문구 중에 '당분간'이란 단어는 자꾸 마음에 걸린다. 문구를 쓴 당사자조차 언제 장사를 재개할지 기약할 수 없다는 걸 '당분간'이란 단어를 통해 스스로 고백한 셈이니 말이다.
영세상인한테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시간부사는 금기어다. 다달이 지불해야 할 가겟세, 공과금 따위 월 고정비는 장사꾼한테 일종의 부채 의식을 이식시켜 딴마음을 못 품게 만든다. 가끔씩 죽 쑤어 개 주는 짓을 왜 하나 회의하기도 하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열정페이를 스스로 강요하면서 오늘도 내일도 버틴다. 그러니 영세상인은 특히 아파서는 안 된다. 회복이 더딘 중병이라도 들면 그간 애써 이뤄 놓은 모든 것이 다 물거품이 되기 십상이라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당분간 쉬겠다'면서 여지를 남기지만 그걸 기다려 주는 손님은 그리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 감자탕 점방문에 써붙인 새 안내문에 깎새가 쉽사리 눈을 떼지 못하는 까닭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