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자랑스럽다

by 김대일

낯선 한국땅으로 온 외국인의 정착기를 소개하는 <이웃집 찰스>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동한 대목이 있다. 한국에서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는 포레스트라는 미국인의 일상을 그려 나가던 중에 11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골을 뿌린 데서 제사를 지내는 장면이었다. 야구에 진심이었던 아버지와 캐치볼하는 사진을 영정으로 놓고 아버지 고등학교 시절에 쓰던 포수 헬멧까지 챙겨와 조촐하게 제사상을 차리고선 아버지를 추억했다. 생전에 맏아들인 포레스트에게 무한 애정을 쏟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의외로 먹먹했다.

포레스트: (아버지한테)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는데, 그냥 I love you. 사랑해요, 사랑합니다.

울먹이면서도 쉬지 않고 되뇌이는 '아버지, 사랑해요'라는 말에 아버지를 향한 한없는 그리움이 묻어났다.

포레스트: 항상 "포레스트, 네가 자랑스럽다" 그런 말씀 많이 하셨는데 (그런 말들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저도 자랑스러웠어요. 아빠 같은 아빠가 있었으니까. 아버지, 잘할게요!

특히 외국사람이 가족이나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네가 자랑스럽다'라고 격려하는 말이 입버릇처럼 자주 튀어나온다. 듣기 좋은 말도 자꾸 들으면 비위를 거스르기 십상이지만 자랑스럽다고 북돋워 주는 말은 뉘앙스가 좀 다르게 들린다. 들을수록 정신을 앙양하는 묘한 감칠맛이 나는 게 우려낼수록 진국인 곰국을 닮았다면 어울리는 비유일까? 고달픈 타국 생활에서도 우직하게 자기의 길을 걷는 포레스트를 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성싶다.

노상 자랑스럽다고 떠드는 그 원천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도대체가 궁금해 미치겠지만 오래되어 공고한 유대감에 짐짓 어깃장을 놓을 멍청이는 아니다. 설령 덜 자랑스럽다고 해도 자랑스러워함으로써 틀림없이 꼭 자랑스러워진다는 걸 확신하는 식구나 친구들의 속깊은 배려라는 걸 모르는 바도 아니다. 그래서 그 말은 더욱 인상깊다.

자문했다. 누군가에게 '난 네가 자랑스럽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아니, 단 한번이라도 표나게 '난 네가 자랑스럽다'면서 누군가에게 용기를 북돋워 준 적이 있는지. 부끄럽다. 평생 자긍심과 열등감 사이를 갈팡질팡하는 까닭이 어쩌면 '난 네가 자랑스럽다'는 입에 발린 소리조차 어려워하는 빌어먹을 엄숙주의 때문일지 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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