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대일 Nov 20. 2023

무시

   토요일 모처럼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마감 시간이 임박하는데도 손님 발걸음이 이어졌다. 하지만 한껏 들뜬 기분은 점방문 열고 들어오는 마지막 손님 얼굴을 보자마자 순식간에 식어 버렸다. 그간 겪은 진상손님을 블랙리스트로 만들면 거의 상단에 이름자 박혀도 무방할 인간이 등장해서 말이다.

   처음에는 말이 너무 없어 답답하던 단골이었다. 땅속으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용건을 밝히는데 하대인지 존대인지 분간이 안 갔다. 그러던 자가 언젠가부터 말문이 트이자 대놓고 반말지거리였다. 액면으로 견줘도 깎새와 벌어질 연배가 아닐 성싶은데 종놈 부리듯 함부로 대하는 품이 여간 꼴불견이 아니었다. 그 정점이 지난 8월 어느날이었다.  

   "야, 이거 해서 한 달에 5백은 벌어 가냐?"

   진의가 무엇이건 간에 경우가 전혀 아닌 언사라 깎새는 맞서 대들까 하다가 겨우 참았다. 5백만 원 못 벌면 인간 이하라는 뉘앙스는 그저 깎새 자격지심인 걸까. 그리 지껄이는 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이 벌길래 저리 방자할까. 돈을 갈퀴로 긁어모으는 작자면 뭐가 아쉬워서 커트 5천 원짜리 점방에 와서 깎새한테 머리통을 맡기는 것일까. '돈'이 인생을 평가하는 유일한 잣대로밖에 삼을 줄 모르는 저열한 얼간이로 그자를 규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일이 있고부터 매달 찾아와도 묻는 말에 대답은커녕 철저하게 무시해 버리는 깎새였다. 실은 마주대하는 것 자체가 역겨웠다.

   커트와 염색을 주문하면 암만 서둘러도 30분은 족히 조붓한 공간을 함께 있어야 한다. 그것 자체가 숨막히고 끔찍했다. 토요일도 마찬가지였다. 그자는 염색 물이 드는 시간이 지겨웠는지 핸드폰, TV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더니 불쑥,

   "오늘 무지 춥더만요. 새벽에는 눈도 제법 쏟아지던데 출근할 때 괜찮았어요?"

   깎새를 향해 말꼬리를 슬쩍 올리는 진상. 속이 아주 밴댕이 소갈머리가 아닌 깎새라서 그만하면 추임새를 맞춰줄 만도 한데 끝내 말문을 열지 않았고 아예 무시해 버렸다. 싫은 놈은 죽었다 깨어나도 싫은 법이다.

작가의 이전글 시 읽는 일요일(12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